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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ug 24. 2024

떠날 자는 떠나게 하고

연중 제21주일 / 요한복음 6,60ㄴ-69

'말을 할까? 말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붙들고,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까 말까 망설여 본 적 있으시죠? 저도 그런 일이 매우 자주 있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내 일로 돌아올까 봐 주저한 적도 있고, 관계가 어그러질까 두려워 입을 다문 적도 있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말이야 '내가 말하지 않기를 잘했네.' 하고 스스로 칭찬해 주게 되지만, 내 몸 사리자고 입을 다물고 못 본 척, 아닌 척했을 때는 영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소신 있게 할 말은 했어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소신발언'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어요. 어린이집 교사를 할 때는 부모에게 아이가 지내는 모습을 솔직하게 전달해야 하는데요, 아이가 보여주는 부정적 문제 행동에 대해 소신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했거든요. 아무리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한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에 대해 객관적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서, 기대했던 것과 다른 말을 교사에게 들은 부모는 그날 저녁으로 퇴소를 요청해 오기도 했습니다. 육아 파트너로 믿었던 부모라서 아이의 생활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렇게 떠나 버리고 나면 그날 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씁쓸해했지요.

'소신발언이라고? 그딴 건 개나 줘 버리라지.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 걸 그랬나 봐.'


사람들 귀에 거슬릴 줄 알면서도 끝까지 소신발언을 하고야 마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 그려집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지 않는 예수님에게 실망을 한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인간관계에 초연한 하느님이라고 해도, 그분의 마음 역시 외롭고 처연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열두 제자에게 물으시는 말씀에 슬픔과 실망이 묻어납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죽은 이를 다시 살리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하고,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조곤조곤 토론하시고, 부패한 권력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상남자 예수님이지만,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모습은 쿨하게 넘기기 어려우셨나 봅니다. 이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같이 다닌 첫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를 버리고 갈 거냐?"라고 묻는 모습이 무척 외로워 보이죠.


요한복음 사가는 이런 예수님에게 위로를 준 제자를 시몬 베드로라고 적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 곧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우고 배운 바를 후대 사람들에게 잇는 정통교회의 수장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의 수장인 교종을 명명백백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 뇌피셜이기는 하지만, 저는 오늘 복음 상황을 겪으며 예수님이 베드로를 정통 교회의 수장으로, 반석으로, 지도자로 세우리라는 마음을 굳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 중 셈이 가장 빠른 사람은 가리옷 사람 유다였을 것이고, 맡은 역할에 대한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은 요한이었을 겁니다. 행정 능력은 세리였던 마태오가 뛰어났을 수 있고, 토마스는 논리가 분명해서 자신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쩍어 하는 명민함을 보였겠지요. 다른 제자들의 그런 인간적인 능력에 비하면 베드로는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입니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파악을 잘 못 해서 예수님에게 핀잔을 먹기도 하고, 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고 자기 살 궁리를 했던 못난 제자. 이런 베드로의 인간적 약점이나 허점을 예수님이 모르실 리 없는데 예수님은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십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힘들고 외로워하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섭섭하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희가 선생님을 두고 어딜 간다고요? 우린 절대 안 갑니다! 선생님의 소신발언은 훌륭했어요. 선생님이 선생님 이익을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닌 걸요. 선생님은 진짜 남다른 분이라니까요. 저희는 처음부터 그렇게 믿어 왔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에 이어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후계자로 베드로를 낙점하신 이유는 베드로가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고통에 빠진 사람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 대상이 사람이든 하느님이든 관계없이 진정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마음,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 지도자에게는 그 어떤 능력보다도 그렇게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고통을 겪은 사람을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없는 말을 지어냈다든가, 내 이익을 위해 교묘히 말을 바꾸지 않았다면, 내가 말한 것 때문에 떠났나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떠날 사람은 무슨 핑계를 들어서든지 어차피 떠났을 테니까요. 내가 누구를 믿고, 누구와 끝까지 함께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에요. 이는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그분과 함께 가겠다고 할지, 아니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 예수님을 원망하고 실망하며 떠날 것인지도 내가 결정해야 할 몫인 거죠. 예수님은 그 선택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기겠지만, 우리가 그분 곁을 떠나겠다고 하면 아마도 그때처럼 좀 슬퍼하실지도 모릅니다.

"너희, 진짜 나를 떠나고 싶은 거야?"라고, 어쩌면 조금 울먹거리실지도요.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Widerspruch unter den Jüngern
Viele seine Jünger, die das hörten, sagten nun: Das ist eine harte Rede; wer kann das anhören? Da Jesus aber von sich aus wußte, daß seine Jünger darüber murrten, fragte er sie: Ärgert euch das? Wenn ihr nun den Menschensohn dorthin auffahren seht, wo er vorher war, was dann? Der Geist ist´s, der lebendig macht; das Fleisch taugt dazu nicht. Die Worte, die ich zu euch geredet habe, die sind Geist und sind Leben. Aber es gibt einige unter euch, die glauben nicht. Denn Jesus wußte von Anfang an, wer die waren, die nicht glaubten, und wer ihn verraten würde. Und er sprach: Darum habe ich euch gesagt: Niemand kann zu mir kommen, wenn es ihm nicht vom Vater gegeben ist.

Bekenntnis des Petrus
Von da an wandten sich viele seiner Jünger ab und gingen hinfort nicht mehr mit ihm. Da fragte Jesus die Zwölf: Wollt ihr auch weggehen? Da antwortete ihm Simon Petrus: Herr, zu wem sollten wir gehen? Du hast Worte des ewigen Lebens; und wir haben geglaubt und erkannt, daß du der Heilige Gottes b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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