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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Sep 08. 2024

그분은 모든 것을 좋게 만들었다

연중 제23주일 / 마르코복음 7,31-37

저는 주일이 지나면 월요일에 다음 주 복음을 미리 필사해 놓고 서너 댓새 동안 묵상을 하면서 강론글 준비를 합니다. 연재를 하기로 토요일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는 주로 묵상이 잘 안 되거나 서두가 풀리지 않아서인데요, 이번 주간에는 이변이 일어났지 뭡니까! 쓰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아서 쓰지 못한 거였거든요. '딱 한 종류만 공략해야지'라고 마음먹고 들어선 뷔페식당에서 요것도 먹고 싶고 조것도 담고 싶어 접시만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망설이다가 연재일을 놓쳤어요.


연중 제23주일인 이번주 복음은 길지 않습니다. 줄거리도 명확해요.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을 한 바퀴 돌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신 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해 주신 사화입니다. 여타 치유 사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예수님이 그를 고치시면서 독특한 행동들을 하신 거죠.

그 사람을 군중에게서 따로 떼어놓지 않나, 손가락을 두 귀에 넣으시지 않나, 거기에 (더럽게?)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지 않나(우웩, 더 더럽게?), 듣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무슨 주문 외우듯 "에파타!"(수리수리 마하수리?)라고 하시질 않나. 말씀 한마디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고, 옷자락에 스치기만 해도 병이 낫는 기적을 행하시던 분이 마술사처럼 요상한 행동들을 합니다. 더욱이 손 씻기와 비말접촉에 극도로 예민해진 코로나 시대의 시민으로서는 위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고, 아직 어려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들과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제가 제 삶의 자리에 비추어 예수님의 행동을 해석해 보면,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의 눈높이를 고려한 맞춤식 처방이었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정서적으로든, 인지적으로든 다른 아이에 비해 결핍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도와줄 때는 그 아이를 따로 데리고 알려주었거든요.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집단으로부터 일단 분리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너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뜻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사인을 보내죠. 그 사인은 상황에 따라 어떤 손짓이나 말로 하게 되는데요, 이를테면 다친 아이에게는 상처를 '호~' 하고 불어준다든지,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아이는 꼭 안아준다든지, 거짓말을 하는 아이에게는 눈맞춤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에게 예수님은 수화처럼 그에게 당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고쳐줄 거야. 이 손가락으로 귀가 들리게 해주고, 입이 마르지 않아 말을 더듬지 않고 잘 하게 될 거야.'라는 마음을 담아 그의 귀와 혀를 건드립니다. 이런 행동은 단순하지만 귀먹고 말 못 하는 이에게 그분의 의도를 전달할 충분한 도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이 모든 치유가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루시는 일임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며, "에파타!" 하고 말씀하시는 행위로요.


처음에는 여기까지 글을 쓰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어 성서를 베껴 쓰던 도중, 37절 말씀이 번개처럼 번쩍 하며 제 마음을 치고 들어오더군요.

"Er hat alles gut gemacht."

우리말 성서에서는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라고 씌어 있으나, 위의 독일어를 직역하자면 "그는 모든 것을 좋게 만들었다."입니다. 언뜻 같으면서도 다른 뉘앙스입니다. 아울러,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뒤 말씀하셨다고 씌어 있는 "보시니 좋았다."라는 말씀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함이 이렇게 다가오네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좋게 보신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좋게 만드신다.
성령은 모든 것을 좋게 유지하신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서 좋지 않음은 없다.

이번 주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번에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생태계는 무너져 지구는 신음하고,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권력욕과 돈 귀신에 씐 권력가들은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질병에 걸린 이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나 자신 역시 칠죄종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일은 여전히 일어날 겁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좋게 보시고, 좋게 만드시고, 좋게 유지하시려는 하느님께 더욱 간절히 매달려야겠지요. 그 선함을 이루시라고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향해 "에파타!" 하고 크게 외쳐 달라고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Die Heilung eines Taubstummen
Als er aus dem Gebiet von Tyrus wieder fortging, kam er durch Sidon an das Galiläische Meer, mitten in das Gebiet der Zehn Städte. Und sie brachten einen Taubstummen zu ihm und baten ihn, ihm die Hand aufzulegen. Und er nahm ihn aus der Menge beiseite, legte ihm die Finger in die Ohren und berührte seine Zunge mit Speichel, sah zum Himmel auf, seufzte und sagte zu ihm: Hefata! das heißt: Tu dich auf! Und sogleich taten sich seine Ohren auf, und die Fessel seiner Zunge löste sich, und er redete richtig. Und Jesus gebot ihnen, sie sollten´s niemand sagen. Je mehr er es aber verbot, desto mehr breiteten sie er aus. Und sie erschraken über die Maßen und sagen: Er hat alles gut gemacht; er macht, daß die Tauben hören und die Stummen r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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