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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Sep 20. 2022

콩나물밥

시루에서 키운 콩나물

 "밥 먹어라!"

  담장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면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기적을 울렸다. 재차 부를 때는 밥상을 방안에 들일 때이다. 그전에 집에 도착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덥거나 춥다고 해서 딱히 계절을 구분하지 않았다. 학교, 심부름, 숙제, 만화책, 어쩌다 학생 잡지나 동화책을 선물 받으면 표지가 닳도록 읽고 읽었다. 그 외는 동네와 산과 들판을 누볐다. 모퉁이 돌아 학교 운동장은 뜀박질 장소일 뿐이다. 나에게는 개울과 산과 꽃이 놀이터이고 학습장이었다.

  코끝에 봄기운 나풀거리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 켠다. 아른거리는 햇살 아래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댄다.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고 놀이를 시작한다. 특혜가 있다면 오빠가 셋이나 있어서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오빠 꽁무니 쫓으며 깡통차기와 마부리치기(구슬치기), 자치기를 한다. 깡통차기는 쫓아다니며 깡통에 발길질하는 놀이이고, 마부리치기는 한쪽 눈을 감고 상대의 마부리를 맞추면 되는 것이지만, 자치기는 정말 신경을 써야 한다. 땅바닥의 흙을 종지기만큼 파내고 그곳에 한 뼘 길이의 아들 작대기를 세운다. 부지깽이 길이의 어미 자로 아들 작대기의 윗부분을 톡 쳐서, 붕 뜰 때 딱 맞춰 멀리 쳐내야 한다. 헛손질하면 바로 탈락이다. 어미 자로 거리를 재서 승패를 가르는 이 놀이는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놀이를 마치고 시린 물에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 콩나물밥이다." 밥상에는 콩나물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짓간 구석의 플라스틱 통에 묻어둔 움파는 밑동까지 잘라먹었고, 사랑채 윗목 옹기 자배기에 심어놓은 움파는 순을 잘라먹어도 며칠 후면 또 뾰족하게 순을 올렸다. 움파를 송송 썰어서 만든 양념장이 입맛을 당긴다. 파와 마늘,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넣고 들기름을 듬뿍 친 양념간장을 한 수저 떠서 콩나물밥에 쓱쓱 비벼 먹는다. 콩나물밥은 뜨거울 때보다 식었을 때가 더 맛있다.

  겨우내 콩나물시루는 안방 모서리를 차지했다. 시루 바닥이 보일 즈음이면 엄마는 다시 콩을 장만해 물에 불렸다가 촉을 틔웠다. 넓적한 자배기에 물을 7, 8부 정도 담고 그 위에 쳇다리를 걸친 후 옹기 시루를 얹는다. 시루 안 아래쪽에 삼베를 깔고 그 위에 짚을 깐 후에 촉 틔운 콩을 안쳤다. 수시로 물을 떠서 콩나물에 부었고, 물빛이 흐려지면 다시 새 물로 바꾸었다. 햇빛을 보면 안 된다고 시루에 두툼한 광목보자기를 씌웠는데, 이삼일 후부터는 발이 나온 콩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콩나물은 두아(豆芽) 또는 두아채(豆芽菜)로 불려왔다. 고려 때 저술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보면 대두황(大豆黃)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이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도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이전부터 식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는 숙주나물을 사용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콩나물을 먹은 것으로 짐작한다.

  어머니는 삶은 보리쌀을 가마솥에 고르게 깔았다. 아마 눌은밥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 위에 무채를 올리고 콩나물을 넣은 후에 쌀을 안쳤다. 물컹한 무밥은 싫었으나 콩나물밥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마 양념장 맛이 아니었을까. 이맘때가 되면 콩나물밥이 그립다.


  콩나물밥을 짓는다. 냄비에 불린 쌀을 안치고 한 번 끓고 나면 뜸 들이는 과정에서 콩나물을 올린다. 뚜껑만 열지 않으면 콩 비린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콩나물밥을 식탁에 차린다. 방 안에서만 뒹구는데 배가 고프랴, 휴대전화 놀이에 한창인 작은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밥 먹어라!"


Tip: 무농약 콩나물은 전체적으로 몸통이 가늘며 뿌리가 길다. 콩나물은 여러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으나 특히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이 뿌리에 많이 함유되어 있어 숙취에 좋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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