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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8. 2022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

한겨울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랬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산속에서 호랑이가 내려온다고 해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곶감을 준다니까 울음을 뚝 그치는 게 아닌가. 곶감, 곶감이라는 놈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단 말인가.

늦가을이면 집안이 환했다. 안채 처마 밑에 늘어뜨린 새끼줄에는 한 뼘만 한 싸리꼬챙이가 가로로 촘촘히 꽂혀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사랑채 뒤란의 감나무에서 딴 큼지막한 둥시를 깎았고, 아버지는 꼬챙이에 감을 꿰었다. 사랑채 처마 밑에는 기다란 싸리꼬챙이에 둥시를 일렬로 꽂아 꼬챙이 양끝에 새끼줄을 묶어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껍질을 벗겨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이 곶감인 것이다. 건시(乾枾), 관시(串柹)라고 하며,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말린 것은 준시라고 한다.


조선시대 조리서 ‘규합총서(閨閤叢書)’에 곶감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다. ‘음력 8월에 단단한 감의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베어 큰 목판에 펴 놓아 말리되, 혹 비를 맞히지 말고 부지런히 말리어 위가 검고 물기 없거든 뒤집어 놓아라. 마르거든 또 뒤집어 말리면 빛이 검고 그 맛이 기이하다… 곶감 거죽에 흰 가루가 돋은 후에 먹으면 좋다’ 감의 떫은 성분이 사라지면 곶감에 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이를 ‘시설(柹雪)’이라 한다.

감은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었으나 곶감은 조선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숙종 대에 중국에 보낸 예물 목록에 곶감이 있었고, 예종실록 1468년에는 ‘지금 곶감의 진상은 상주에 나누어 정하였다’는 기록과 19세기 초에는 종묘제사 때 곶감을 올렸다고 전한다. 상주시 소은리에는 당시 임금께 곶감을 진상했다는 750살 된 ‘하늘 아래 첫 감나무’가 보존되어 있다. 곶감 홍보, 체험학습을 위한 곶감박물관도 자리한다.

‘동의보감’에 ‘곶감은 몸의 허함을 보하고 위장을 든든하게 하며 체한 것을 없애준다’라고 했다. 곶감은 차례, 제사음식의 삼색실과의 하나이다. 수정과에 곶감을 이용하고, 호두를 곶감으로 돌돌 말아 곶감쌈을 만든다. 곶감의 비타민 성분과 호두의 여러 효능은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 특히 호두의 지용성 성분은 곶감으로 인한 변비를 예방해 준다.

역사에 곶감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연잉군(영조)은 경종에게 게장과 곶감을 진상했다. 게는 식중독 균의 번식이 잘 되는 고단백 식품이고, 감은 수렴작용을 하는 타닌성분이 있어 게와 감을 함께 먹으면 소화불량을 수반한다. 게와 곶감을 먹은 경종은 탈이 났다. 연잉군은 경종에게 인삼을 약재로 쓰라고 명했다. 그러나 경종에게는 인삼이 몸에 맞지 않는 약재였다. 음식은 잘 먹으면 약이 되지만, 모르면 자칫 ‘독’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손수 감을 따고 깎아서 곶감을 만들었다. 어떤 때는 곶감타래를 통째로 싸주시기도 했다. 손자들에게 곶감 묘미를 누려주고 싶었을 게다. 아버지 먼 길 떠나고부터는 냉동실에서 곶감이 사라졌다. 흔하게 먹던 곶감은 귀한 간식이 되었다. 텃밭에서 딴 감을 깎아 아파트 베란다에 말려보고, 식품건조기에 넣어도 보았으나 예전 맛은 아니었다. 호랑이가 무서워했던 곶감은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Tip: 곶감은 이로운 성분이 많지만 과하게 섭취할 경우 변비가 생길 수 있다. 당도가 높으니 당뇨가 있는 사람은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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