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님이가 똥통에 빠졌다.
꽃님이의 세련된 원래 이름은 따로 있다.
꽃님이는 지방유지의 늦둥이 딸이었는데, 엄청 귀여웠다.
애지중지 키워서 버릇은 좀 없었다. 망아지 같은 구석이 좀 있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 부르는 대로 그냥 꽃님이라 불렸다.
하루는 꽃님이가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버렸다.
1970년대 초반에는 시골 화장실 대부분이 푸세식이었다.
우리 집 화장실이 실내 욕실 공간에 자리한 것은 1978년이었는데,
당시 시골에서는 상당히 신식이었다.
어른들이 꽃님이를 발견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 번이나 목욕을 시켰다고 했다.
똥독을 씻어내느라 비누 대신
그 당시 유명했던 세제 ‘하이타이’로 벅벅 문질렀다고 들었다.
똥에 들어있던 성분 때문인지
성능 좋은 세제 하이타이 덕분인지 알 길은 없으나
꽃님이의 피부가 그렇게 매끈할 수가 없다. 완전 꿀피부 꽃님이었다.
그런 피부는 내 경험상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중 몇 명에게서나 볼 수 있다.
비단천 같은 느낌이다.
꽃님이 아빠는 꽃님이가 똥통에 빠졌다가 구출된 것을 기념하여 온 동네에 떡을 돌리셨다.
꽃님이는 몸매도 이뻤지만 얼굴이 입체적이라 매력이 있었다.
군중들과 함께 있을 때 유난히 눈에 띄는 10미터 미인이었다.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언제나 생기가 펄펄 넘치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도 많았다. 꽃님이에게 찍히면 꽃님이 친구들 등쌀에 배겨 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랬던 꽃님이가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의 어느 집안으로 시집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는 꽃님이를 따라 이사를 가버리셨다.
우리 동창들은 그 후론 꽃님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여중 동창들 중 소식이 궁금한 몇 명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꽃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