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나는 설악산 흘림골에 단풍을 보러 갔다.
집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인제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대설주의보가 내려 흘림골 탐방로가 폐쇄되었으며,
등산 예약이 취소되었음을 알려주는 문자였다.
나는 한계령 휴게소에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설악산을 향해 갔다.
한계령에 도착하기 20여분 전부터 비가 내리더니
휴게소를 앞두고는 눈이 펑펑 오기 시작했다.
한계령 휴게소 난간에는 내린 눈이 얼음이 되어 쌓여있었고
나는 그 난간에 서서
올해 내리는 첫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단풍 든 나무 위로 눈이 조금씩 쌓였다.
10년 전 나는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그 해 첫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봤다.
초등학교 동창에게 눈이 온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 친구는 내게 '눈길 조심하라'라고 회신을 해왔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너만 나를 째려보지 않으면 돼!!"라고...
그 친구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면서
크게 웃는 이모티콘을 다시 보내왔다.
남녀가 유별한데 우리가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게 된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하고 좌절감만 깊어져
그 친구는 번개탄 스무 장을 사서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세 번째 시도를 하고 나서야
이 친구의 형이 나를 찾아와 동생을 만나봐 주길 부탁했다.
나는 그분이 어렵게 꺼낸 얘기들을 모두 듣고 나서 이 친구를 만나보겠다고 했다.
우리가 20대 초반이던 시절,
군대 가기 전날 이 친구가 내게
술을 한잔 사달라고 용기 내어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름 철벽녀였던 나는
'우리 둘이 술을 같이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며 사뿐히 거절하고선
어려서부터 둘 다 잘 알고 지내던 여자 동창을 한 명 더 데리고 와서
옛날 얘기를 하며 커피숍에서 수다만 떨다 헤어졌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던 날,
우리는 거의 4-5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것 같다.
나는 주의 깊게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고 있는 '보조개가 푹 패인 꾀돌이 우리 반 반장'이 아니었다.
사춘기 이후 성격이 내성적으로 자리 잡은 데다
고학력 고시 폐인으로 살아온 긴 세월이 그 보조개마저 앗아간 듯했다.
나는 그 친구가 혼자 멀리 떠나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후 1-2년 동안 종종 만나 이런저런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어쭙잖은 위로나 조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심리치료와 정신과 치료 일정이 끝났다.
나는 정신과 치료나 심리치료에 대해 주변에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편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치료들이 만능키가 아님을 알고 있다.
결국은 본인이 해결해나가야 한다.
그럴 내적 동기를 스스로 갖는 게 중요하다.
그 친구에겐 그 점이 불확실했다.
주말이면 그 친구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여름휴가 때는 우리 애들과 애들 친구들까지 다 데리고 물놀이를 다녔다.
자상한 그 친구를 우리 애들은 윤 O아저씨라 불렀다.
그 친구에게 차츰 표정이 생기고, 직장생활 적응도 한결 나아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 염려'를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다시 만난 첫 해는 도서관에서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고,
그다음 해 첫눈이 내리던 날은 그 친구가 먼저 문자를 보내왔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직은 그가 감당해낼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
'그 결정은 좀 더 숙고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전근을 신청한 상태였고,
그리곤 방학 중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내려간 지 불과 두세 달 사이에
그 친구는 급격히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향에 내려온 걸 후회하고 있었지만
근무지 변경이 불가능했다.
답답해하는 그 친구의 심경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다가선 그림자를 직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이 친구가 1-2주 후 결혼한다는 소식을 다른 초등 동창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젠 그 둘이 손을 잡고 함께 극복해가야 할 삶이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안부전화를 하며 '결혼한다며? 축하한다. 결혼식 참석은 못하겠지만 축하선물을 보내겠으니 주소를 알려줘.'라고 했다.
그 친구는 차일피일 주소 알려주기를 미루더니 5월 초에 세상을 버렸다.
올해 첫눈이 내리는 한계령에서 나는
익사사고로 먼저 떠난 윤철이와
그렇게 가지는 않겠다고 약속하고선 결국 그 길을 선택한 윤O를
두 눈에 담아 아주 멀리 바라봤다.
먼저 떠난 사람들은 항상 그립다.
사진설명: 위 사진은 그 친구가 떠나던 해 봄에 제게 보내준 세 장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