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5월, 새벽 2시 40분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우리 네 식구는 그 엄청난 굉음에 잠이 깼다.
두세 번 울리고 말겠거니 했지만,
정말 무슨 의도인지 정확히 열 번 울려댔다.
아파트 동쪽 라인 전체가 잠이 깨어 집집마다 불이 켜졌다.
그러다 경적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나 보다 하면서 우리 가족은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또 열 번을!
짜증이 밀려온 남편은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겠다.’며 슬리퍼를 끌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혹여 열받은 남편이 술 취한 사람과 다투면 어쩌나 싶어
나는 우산(방어 겸 공격용 무기)을 하나 챙겨 들고 급히 뒤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파트 앞 골목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는데
골목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흔적이 없었다.
주차문제도 없었고, 시동이 켜진 차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신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들으니 주차장 모퉁이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세를 한탄하는 듯했다.
그 쪽으로 걸어가며 보니까
남편이란 놈이 운전석에 앉아서
차 밖에 주저앉아 우는 아내를 약 올리며
또 클랙슨을 울리려는 제스처를 하려던 참이었다.
나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운전석의 그 남자가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나는 문을 좀 열어보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차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대체 누구길래 이 새벽에 클랙슨을 울려대는지 얼굴 좀 봅시다."라고 했다.
내 말이 들렸는지 그놈은 고개를 뒷좌석 쪽으로 돌리더니
"열쇠가 없어, 열쇠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라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안에서 차 문을 잠그고선
경적을 울리며
자기마누라 애간장을 녹일 심사가 뻔해
나는 백미러 옆에서 보초를 섰다.
잠시 후 대학생인 그 집 큰아들이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본넷을 주먹으로 쾅 내리치더니
"아버지! 나오세요. “라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동면하다 깬 곰 같은 201호 아저씨가 차에서 비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군...'
다음날 나와 우리 애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사과문이라도 붙어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과문이 없었고, 우리 애들은 화가 나 씩씩거렸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우리 남편은
“그 사람도 술 깨고 나선 분명 창피해 죽을 맛이었을 거야. 그러니 놔둬라.”라고 했다.
그런데 어젯밤 10시 15분경,
작은애가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빛의 속도로 누르고 들어와서 킥킥킥 웃고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 있었나 들어보니
작은애가 학원 마치고 귀가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이미 201호 가족이 있더란다.
분위기가 어색해서 살펴보니까
말쑥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201호 변호사 양반이 술에 취한 채 맨 발이더라는 것이다.
그 옆에는 그의 아내가 "내가 창피해서 못살아. 못살아."를 연발했고,
대학생 큰아들 손에는 201호 아저씨의 구두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2층에 도착하고서도 그 곰 같은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아
그의 아내는 남편을 꼬집으며 "얼른 내려! 아이고 창피해서 정말 내가 못살아."를 거듭했다.
하지만 꼬집히면서도 그 변호사는 동공이 풀린 채 미동도 안 했고,
결국 그 집 큰아들이 아버지의 팔을 잡고 엘리베이터 밖에서 당겨 내렸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한참 만에 성공적으로 내린 그 가족들에게
우리 집 작은애가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그 집 식구들은 창피한지 죄다 못 들은 척하더라고 했다.
"엄마, 201호 아저씨 주사 상습범인가 봐요."
“그러게나 말이다. 어휴!”
나는 그 자가 한 번만 더 새벽에 경적을 울린다면
임시반상회 소집을 요구하겠다고 애들에게 말했다.
몇달 후 201호는 그 집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원래 살던 동네로 이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