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설날, 두 명의 대학생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한국의 명절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 유학생들이었다.
나는 성문 종합 영어 세대인지라 거의 눈으로만 영어가 가능하다.
다행히 중고등학생이던 우리 아이들은 회화가 가능했다.
외국인 초청 프로그램에 대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흔쾌히 찬성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을 배정받았는데,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바로 전 날
아시아 쪽 학생들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전 일찍 도착한 치미는 히말라야 동쪽의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오후에 온 다와는 몽고에서 말 500마리를 키우는 유목민 가정에서 온 대학원생이었다.
갈색 피부의 치미는 거의 서양인 체형으로
어깨가 넓고 다리가 길쭉하며 발이 상당히 두툼했다. 내 남편보다 더 두툼했다.
다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외모에다가 한국말도 유창했다.
부탄 사람들의 75%는 라마교 신자라는데, 치미 역시 그랬다.
그러다 보니 치미가 육류나 생선을 전혀 먹지 않았다.
나물들과 잡채 위주로 식사를 했다.
반면 다와는 고기만 좋아했다. 오로지 고기, only고기, 고기였다.
갈비찜, 소불고기, 심지어 고기산적에서 야채를 뺀 고기까지 다와가 다 먹었다.
그리고 두 학생 모두에게 고춧가루와 마늘은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애들과 함께 윷놀이와 오목을 두었다.
이해력이 좋은 치미는 영어로 규칙 설명을 해주자 금방 1등을 했다.
오후 시간에 우리는 갓 모양으로 지어진 예술의 전당에 가서
미술관과 서예관, 음악당 등 전시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저녁 식사하기 전에 나는 두 학생에게 특별한 선물을 줬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제외하고
약혼식 때 입었던 한복과 친척으로부터 받은 한복 세 벌이 상자에 곱게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본인이 입고 싶은 한복을 직접 고르라’고 했다.
치미는 푸른색 치마저고리를, 다와는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골랐다.
다와는 옷고름에 장식하는 노리개에 더 꽂힌 것 같았다.
다와와 얘기하다 보니 우리말에도 몽고 말이 섞였음을 알게 됐다.
인두도 몽고 언어였다!
부탄조차 오래전 몽고(인도어로 무굴)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사용하는 언어에 몽고어가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게 됐다.
치미에게 들은 인상적인 얘기 중 하나는 감옥에 대한 것이었다.
부탄의 감옥은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외따로 지어놓는다고 한다.
죄인을 지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고,
죄인은 거기서 며칠에서 몇 달을 혼자 지낸다고 한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집으로 달려가고 싶을까?
‘제대로 반성이 되겠다.’ 싶었다.
다와에게 들은 얘기도 기억에 남아있다.
다와가 어려서 심장이 좋지 않아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는데,
나이 차이가 많은 큰오빠가 하루는 늑대를 사냥해서
늑대의 심장을 꺼내와 어린 다와에게 먹였다고 한다.
큰오빠가 오빠가 아니라 족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와가 살아서 유학까지 오게 된 것은 늑대의 심장 덕분일까? 가족의 사랑 덕분일까?
치미가 다녀가고 나서부터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부탄’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몽고도 가보고 싶다. 다와 가족들이 사는 초원에서 밤하늘을 보고 싶다.
부탄의 밤하늘은 팔을 뻗으면 별이 잡힐 것 같이 가깝고,
몽고의 밤하늘은 별이 우수수수 떨어질 것 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괜히 옛 사진 파일을 열었다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고픈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되기 한 달 전
나와 작은딸은 여름방학에 몽고로 여행 갈 것을 계획했다.
부탄 여행은 그리 쉽지 않아 보여서 일단 몽고부터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후로 2년이 지난 이번 여름에도 우린 엄두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