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에 걸친 결혼사

동화 같은 결말을 바라며

by 뚜와소나무

나는 가끔 동화책을 읽는다.

어떤 동화 모음은 90% 가까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속으로 ‘이건 사실, 어린이의 정서를 고려한 하얀 거짓말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친정집 5대에 걸친 결혼사가 떠올랐다.


증조할아버지는 미남에 키가 180cm가 넘는 호인이었다고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살아생전 당신의 시아버지보다 미남인 사람을 못 봤다고 하셨다.

증조할머니의 키는 증조할아버지의 겨드랑이 밑에 머리가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엄청 귀여워하셨다.

얼마나 이뻐라 하시는지 며느리인 우리 할머니께서 하인들 보기가 민망했다고 한다.

그러다 증조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3일이나 식음전폐하셨다.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식사를 하지 않으시니

나머지 가족과 종들까지도 눈치를 보며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효자인 우리 할아버지께서 권해도 수저를 들지 않으셔서

결국 할머니가 상을 들고 들어가 독대한 후에야 몇 수저 뜨셨다.

내가 할머니께 “대체 뭐라고 말씀드렸길래 증조할아버지께서 수저를 드셨어요?”여쭸더니

할머니의 대답이 이랬다.

“아버님, 아래 마을 한씨네 며느리가 산달에 진통을 했는데,

불쌍하게도 난산 끝에 며느리와 애기가 다 죽었습니다.

이 경우 한씨네는 두 번 다시 며느리를 들이지 말고 대가 끊어져야 옳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당찬 며느리의 설득에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신 것 같다.

조상님들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결혼하는 날 얼굴을 처음 보셨다.

할아버지는 말을 타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는 4 인교를 타시고

그렇게 할머니 댁으로 가셔서 혼례식을 올렸다.

말에서 내려 대문 안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멀리서 할머니가 보셨다.

증조할머니를 닮은 우리 할아버지는 보통 체격이었지만,

귀티가 나는 인상에 단아하고 점잖은 태도가 몸에 배어

할머니는 그만 첫눈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시집 안 가겠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다가 등에 담까지 들려 누워있었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후다닥 연지곤지 바르고 결혼식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첫날밤! 드디어 두 분의 남다른 역사가 일어났다.

낯선 남자와 단둘이 방에 있자니 할머니는 고개도 못 들고 바들바들 떨었단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섭소?"

"낯이 익을 때까지는 합방을 하지 않을 터이니 편히 지내시오.”그러셨다고 한다.

그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존대하며 8남매를 낳고 살다가 회혼례식을 올렸다.

우리 부모님은 선 볼 때 한번, 약혼식 날 또 한 번,

이렇게 결혼식 하기 전에 두 번은 봤다고 했다.

집안일이 서툰 엄마가 밥을 태우면 아버지는

“나는 밥보다 누룽지를 좋아해~”라며 다 긁어 드시고,

할머니가 엄마에게 심부름이라도 시킬라치면

아버지께서 득달같이 달려와 대신 해주곤 해서

아들 부심이 있었던 할머니께서 아주 기함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대학 선배 소개로 여러모로 평범치 않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조건이 탐탁지 않았던 친정아버지는 결혼식 대신 약혼식을 하라고 했고,

약혼 후에도 내게 ‘언제든지 파혼하고 싶으면 말만 해라.’고까지 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하회탈보다 자글자글한 눈주름에다 잇몸 만개 웃음으로

나와의 인연을 소중히 잘 지켜냈다.

우리 큰딸은 고교 동창끼리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

신발 size 300에 체중 100kg의 사위는 여러모로 차~암 듬직하다!

판다와 펭귄 같은 둘의 다정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100년 사이에 우리 집안의 결혼 풍경은 시대와 발맞추어 많이 바뀌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상투적인 이 문장이

어쩌면 먼저 세상을 떠나기 마련인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에게 바라는 가장 간절한 염원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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