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7월 토요일 오후 아영이(가명)가 진료실로 들어왔을 때
나는 퇴근 후 고속버스를 타고 '청남대' 갈 생각에 살짝 들떠 있었다.
아영이는 침구 치료실을 무서워하며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내 진료실에 있는 배드에서 토요일 마지막 치료시간에 늘 침을 맞았다.
평소처럼 침을 꽂아두고 2-30분 정도 기다리는데
아영이 엄마가 조용히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뭐예요?” 물었더니
“엄마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어요.”라고 대답하셨다.
종이가방 속에는 민소매 상의, 반팔 상의, 카디건이 들어 있었다.
대바늘로 뜬 옷이었는데 마무리와 주변 장식은 꼼꼼히 코바늘로 뜬 정성이 느껴졌다.
심지어 시원하게 입으라고 풀까지 먹여서 다려놓은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보고 나서 아영이 엄마와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옷을 바라보았다.
아영이 엄마는 뜨개질을 할 줄 모른다.
내 옷을 만드신 분은 아영이의 외할머니셨다.
"주말마다 친정에 가서 엄마 유품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데,
웬 상자가 있어서 열어봤더니
거기에 'OO한의원 O원장님'이라는 메모가 있었어요.
아마도 엄마가 원장님께 드리려고 뜬 것 같은데,
그 무렵서부터 편찮으셨잖아요. 그래서 전하지 못하고 가신 것 같아요."
아영 엄마의 목소리는 잠기고 있었다.
항암 투병도 꿋꿋이 잘 견디셨는데...
깨끗하다던 검사에서 불과 몇 달 만에 셀 수 없이 까맣게 암세포들이 발견되었고,
마지막엔 의식 없는 일주일을 보내시고 소천하셨던 아영이 외할머니.
나는 그분을 몇 년 전 내 진료실에서 딱 한번 뵈었다.
아주 영민하고 인자하신 분이셨다.
아영이 엄마와 나는 나이대가 비슷하고
같은 의료인이기도 해서
치료 외에도 아이들의 진학이나 가족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더러 나눴었다.
그래서 한번 밖에 뵌 적 없는 아영이 외할머니지만 종종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나는 옷을 어루만지며
“여기까진 대바늘로 뜨셨고, 여기부턴 코바늘로 하셨네요.”라는 얘기를 힘들게 꺼냈다.
암투병 중에 완성해서 풀까지 먹여놓으신 그 성의를 생각하니 안경 너머 시야가 흐려졌다.
'아영이 할머니,
감사드려요.
이 선물을 빈 손으로 받게 되어 아쉽고 서글프네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다지는 것으로 저의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나는 장애우들과 포천 허브아일랜드로 견학 갈 때 그 옷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