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렌탈과 구독의 시대. 지금 현대인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생존 방식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빌리거나 정액으로 일정 기간 제공받는 일종의 계약체결. 그럼 빌릴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이며 가격은 얼마여야 할까? 문득 진심으로 빌리고 싶은 것이 있어 우르르 떠오른 일종의 잡생각이다.
얼마 전 한 모의수업에 참석했더랬다. 사실 이미 완료한 과정의 마지막 실습 같은 모의수업이었는데 과거 참여자들에게도 열려 있어 추가 실습이 필요한 나 같은 사람에겐 고마운 자리였다. 이른바 불안한 사람들의 자가 치유 프로그램. 나와 비슷하게 사람 사이 관계 맺기에 힘겨워하거나 집단 안에서 긴장감이 높은 이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우리는 지난 얼마간 각자 문제해결을 위해 실천했던 노력들을 이야기해보고 스스로 실습하고 싶은 것을 준비해 시도해 보았다. 참석자 모두 고통 받거나 고민스러운 상황들이 서로 다르니 연출, 준비한 상황도 다양한데 내 경우 주로 일반적인 자기소개나 대면보고 연습을 했었다. 그날도 비슷한 내용으로 수업이 이어졌다. 본 과정 완료 후 오랜만에 다시 참여한 것인데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 앞이라 그랬던지 어느새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준비한 것도 연습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아침 문득 우리가 긴장감에 힘겨워 죽을 것 같은 순간들(쉽게 말해 공황 또는 그에 가까운 순간이다), 당장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때에 ‘용기‘라는 것을 잠시 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지극히 편의적인 망상이 떠올랐다. 잠시 용기를 빌려 쓸 수만 있다면. 수많은 고통의 순간들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삶은 훨씬 더 밝고 유쾌해질 것 같은데. 사실 긴장에 찬 순간들은 그 순간 자체도 괴롭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상당한 대기시간에 지쳐버린다. 즉 초조해 마음 조린(조리다 못해 제대로 절궈져 몸과 마음이 흐물거리고 액체가 되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시간!) 시간들이 어찌보면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곧 도래할 어느 순간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느라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탈진하고 마는 식. 돈이 필요할 때를 알고 미리 대출상품을 신청하듯 용기가 필요한 순간을 대비해 꺼내 들 하루치 용기를 미리 준비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많은 문제들이 스르르 해결될 것만 같다. 결혼식 입장이나 발표회, 공연, 크고 작은 스포츠 경기, 대회들, 작게는 대면보고와 발표, 회식 자리까지. 수많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순간들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다 상상하기도 어렵다.
오랜만에 아이 같은 공상(어린이가 하면 공상, 중년이 하면 망상이 되는 건가)에 신나게 빠져 들었지만 현실감각을 아주 잃지는 않았는지 문득 그 댓가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를 내야 하듯 빌려 쓴 용기의 댓가는 뭐가 되어야 할지. 자연스레 더 크고 강력한 용기로 돌려주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용기에도 양과 질을 따질 수 있다면 적정량을 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시 당초 빌린 이에게 없어서 빌렸던 용기라는 것이 어느 시점이 지나면 절로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돈이야 벌면 되지만 용기라는 것이 갑자기 새살 돋듯 생겨나고 떼어내 나누어 줄 수도 있는 것인가? 이미 내가 만든 다른 월드에서 또다시 망상이 거듭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 앉아 있던 이들의 얼굴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나이와 성별, 직업과 근무 형태, 가진 고민과 분위기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동병상련 탓인지 모두 하나 같이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었다. 방금 내린 지하철이나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얼굴이며 편의점 계산대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한 친밀하며 보편적인 얼굴들. 그들 한명 한명에게 건투를 바라며 오늘치 용기가 있다면 기꺼이 1/4씩을 나눠주고 싶다. <감사^^>
어쩐지 씁쓸한 마음에 첨언해 보자면 용기 부스트 업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아니어야 한다!) 긴장 관리든 용기 증대든 분명 스스로가 한결 편안해지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오늘도 출근길에 배운대로 훈련을 했다. 아직 필요한 분량이 충분히 확보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하루씩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