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떠납시다2_
세상 많은 엄마들이 그럴지 모르지만 일터에서의 나와 집안에서의 나는 몹시 다르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새벽 오늘의 행선지와 시간표를 짜느라 바쁘게 머리를 굴리다 느낀 것이다. 우선 일터에서의 나는 매우 소극적인 편이다. ‘수동적이고 변화에 느리며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고자 함’, ‘새로운 업무에 호기심이 적으며 적극성이 결여됨’.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 누군가가 다면평가 기회에 그렇게 나를 묘사한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반대로 집안에서의 나는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장악한다. 자녀에 대한 모든 선택과 결정은 물론이며 공동재산의 관리, 차량 교체나 주거 이전 등등 집안에 중요한 문제 대부분을 내가 먼저 결정하고 남편에게는 동의를 구한다. 사실상 동의마저도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결국 책임 소재도 내가 클 수밖에 없는데 가정 공동체니 결과에 따른 문책이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의 죄책감 같은 것이 응축되고 내 안에 쌓여 머물다 휘발되거나(운이 좋으면!) 뜬금없는 때에 기이한 방식으로 분출될 뿐이다.
아무튼 여정 중에도 강렬하게 느낀 바, 집안에서의 나의 적극성과 활동성이 가장 극대화, 최대화 되는 것이 가족 여행이다. 수개월 전부터 내 나름대로 세심하게 조사, 검토해 행선지를 선택한다. 형편 되는대로 자금을 모아 가깝든 멀든 연간 한두 번은 나라 바깥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아무래도 공공기관 종사자다보니 자금 사정이라는 것이 뻔하다(참으로 유감스럽다). 새로운 곳으로 되도록 멀리멀리 떠나 오래오래 여행하고 싶은데 자금 여력은 좋지 못하니 여행지에서는 편치 못한 환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모두가 먼 곳으로 같이 가기 위해서는 항공권 구입부터 적은 액수가 아니다.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확보해야 하니 한계는 있지만 되도록 숙박료 등 체류비를 낮추고 성수기는 피해서 교통편을 예매한다. 그렇게 찾아다니며 최근 여권에 도장을 남긴 나라들이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역 국가들이다. 물론 가족 구성원의 민원(!)으로 비행시간 2시간 이내의 따뜻하고 친숙한 국가들로 간 경우도 많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여행지를 선택하다 보니 여정 중에는 한국인을 포함, 동양인과 부대낄 일이 별로 없으며 북적대는 포토존 식의 관광지 느낌도 적다. 여행 인프라는 약한 곳이지만 친절한 유튜버와 블로거들이 알려주는 상세하다 못해 섬세한 정보들로 대부분 커버 가능한 정도였다. 사건, 사고라기보다는 사소한 이벤트가 벌어지긴 하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가족만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정도다.
또 그런 하루가 되길 기대하며 구글맵을 넘기던 중 집안과 직장, 두 필드에 따라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모드전환의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사실상 내 연배의 현역 엄마들은 지금 우리 모습과는 다른 엄마를 보며 자랐다. 가장으로서 바깥 ‘일터’에서 하루를 가열 차게 보내시고 ‘퇴근’하신 분들은 아빠들이었고 아빠라는 존재는 집안의 대소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전업주부라는 이름아래 부지런하고 친절한 엄마들이 집안에서 일어나고 일어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관리했다.(떠올려보면 삼남매를 키운 내 엄마의 머릿속을 나는 지금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기억나는 장면들로 유추해 볼뿐인데 급식이 없던 시절, 도합 다섯 개의 도시락이 올려진 식탁이나, 운동회 때 학부모 줄다리기(그런 것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에서 우리 반 학부모 대열에 섰다가 상대편 동생반 엄마와 마주 보고 깔깔대던 모습, 우리 옷을 고르다 지쳐 본인 스타킹은 사지도 못한 채 돌아서던 기억 같은 것들.)
그런 바깥일하는 아빠와 집안 관리 전담 엄마를 보고 자랐지만 그 딸들은 똑똑하고 씩씩하게 자라나 더 똑똑하고 더 희생적인 엄마가 되었다. 오늘날 왕성한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녀들은 세상 곳곳에서 팀장과 부장, 파트장과 책임수석, 어소시에이터와 이사, 프로와 작가가 되어 지휘를 하고 회의를 참석하고 무대에 서고 피티를 한다. 사회를 보고 진행을 맡고 반론을 하고 결재를 하고 보고를 하거나 받는다. 참으로 대단한 것은 그러는 사이사이 라이딩을 하고 진료를 데려가고 처방전을 받아오고, 상담에 응하며 셔틀버스 시간을 조정하거나 심지어 때를 밀어주고 귀지를 파주고 손톱을 깎아준다. 우렁찬 목소리로 잠을 깨우고 싸늘한 시선으로 째려보며 잔소리를 퍼붓다가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기도 한다. 참으로 가열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들이다. 요약하자면 지혜롭고도 희생적인 엄마의 덕분으로 알파걸이 된 것이다.
타고난 성정과 게으름으로 조직 내 리더는 아닌 나 같은 주임도 그에 준하게는 해야 한다.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일하든 집안에는 또 다른 현장, 필드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온전히 풀코스를 뛰어주기를, 완주해 주기를 기다리는 실내 필드. 때로는 초롱초롱한 눈방울로 간절하게, 때로는 전략적으로, 때로는 방관적으로, 때로는 영악하게 기다리고 드물게는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그렇다! 이 모드 전환의 이유는 주체자인 나 스스로에게 있지 않았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훅 펼쳐질 뜨끈뜨끈한 실내형 필드가 또 있기 때문에 모드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터에서야 내가 아니라도 평가를 받고 실적을 쌓고, 좋은 성과급을 받고, 승진을 원하는 수많은 주임들이 상시대기 중이다.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자리를 모두가 경쟁적으로 노리고 있으니 내가 주춤거리며 물러서 있는 것쯤은 조직차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덕을 베푸는 것이 된다.
그러나 내 집안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경우가 아직은 다반사다. 하루이틀 부재중 설정이라도 할라치면 이만저만 손이 가는 것이 아니며 대직자나 대행권한 지정 같은 것은 지금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니 모드전환을 할 수밖에. 예열도 없는 가열찬 모드전환.
오늘 저녁도 반강제적 모드전환에 가느다란 한숨이 쉬어질 전국 수많은 알파걸들에게 건투를 빌며 좌우명 비슷한 것도 되뇌어 본다. 엄마의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