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6급일기 04화

# 빌런유감

by 장판

사실 소규모 시설일수록 문제는 시설 관리가 아닌 인력 관리다. 작은 사업장들은 대개 좋게 말하면 가족적인 분위기로 서로 보듬어 가며 지내지만 나쁘게 보자면 체계와 규율이 없다거나 있다 하더라도 영향력의 자장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웬만한 실수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업무상 과실이 있다 해도 사업장 현실상 눈만 뜨면 마주해야 하는 처지니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발령 받아 갔던 사업장도 이미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기관 또는 시설 대부분에는 미화, 경비, 안내 3개 분야가 거의 필수적이다. 그곳도 딱 그것으로만 미니멀하게 짜여 진 곳이었다. 각 분야별 종사자가 2~5명에 불과했으니 그야말로 초미니, 사실상 일반적인 규모의 사업장 기준으로는 전체가 한 팀 정도라 해도 될 소규모였다.


길지 않은 공공기관 종사자 경력에 어쩌다 보니 그 사업장으로 발령이 났고, 또 어쩌다보니 옮겨 간지 얼마 안되 정규 티오 한 명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하게 또 다른 이의 업무까지 덩달아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 핵심이 다름 아닌 사업장 용역 관리였다. 개인적으로 사람 사이 벌어지는 시끄러운 일이라면 딱 질색이라 종사자 모두가 부디 조용히 지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디나 빌런은 있는 법, 해당 사업장도 어김없었다. 다만 그 빌런은 빌런 모드가 아닐 때가 많아 처음에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빌런은 업무에 있어서는 완벽을 기하는 터라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안내 업무 특성상 표정과 말투, 친절도와 능숙도 등이 중요한데 다른 시간이야 어찌 되었건 그 빌런은 업무 시간만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문화공간으로서는 겨우 운영 가능한 좁디좁은 사업장 안에서 종사자 간의 목소리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빌런은 방문객이 다가오면 언제나 즉시 벌떡 일어나 외치다시피 큰소리로 인사하고 모르시는 부분은 없는지, 이용에 불편은 없는지 적극 응대했다. 방문자들은 주로 오전보다는 오후에 많았는데 점심 후 방문자가 몰리는 때에는 건물 구석구석이 빌런만의 목소리로 채워지기도 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내부적 반목이었다. 말이 좋아 반목이지 가만히 보면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봐도 무방할 일을 주기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업무를 인계받기 전부터 몇 차례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담당자가 되어 시시콜콜한 사정을 알고 보니 상황은 꽤 심각했다. 빌런은 자신의 업무 구력을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직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시시콜콜히 감시, 지적했다. 일을 맡긴 입장에서도 너무 사소해 입에 올리기 민망한 것조차 업무상 과실로 몰아 망신을 주곤 했다. 기물이 조금 비틀어져 놓여있다던가 하는 보는 입장에서도 질리고 숨 막힐 사소한 것을 꼬투리 잡는 식이었다. 그런 식의 실수나 잘못을 이유로 업무용 단체방에 도배에 가깝게 묘사하고 한 명을 대상으로 반복 지적하는 행위는 가히 갑질에 가까워 보였다. 일을 맡긴 입장에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지적을 위한 지적’과 반목의 부추김이었다.

빌런은 한 명의 직원 특히 신입 직원에게 몰아붙이기를 반복한다는 것이 다른 직원들의 중론이었다. 일을 맡긴 측에서 알게 된 것이 그러하니 같은 팀 내의 자세한 사정은 더 심할 것이 뻔했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사기 저하는 물론 거기에서 파생되는 말 못할 감정 소모가 매우 커보였다. 담당자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빌런으로 인해 다른 직원들의 퇴사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대립하거나 서로간 껄끄러운 이야기 자체를 싫어하는 고분고분한 신입 직원들이 일을 익힐 때쯤 되면 견디지 못해 퇴사하기를 반복하니 결국 빌런만 최고 경력자가 되어 모든 노하우를 쥐고 있는 상태였다. 일을 맡기는 측면에서는 조마조마한 상태였는데 다른 결국 마지막 사건이 벌어졌다. 또 다시 신입직원이 상황에 몰려 의지와 상관없이 퇴사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알아보니 역시나 같은 종류의 내막이었다. 일을 맡긴 입장으로서, 담당자인 나와 기관장은 발주처의 의지를 실어보기로 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일지언정 사업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더 이상 빌런을 내버려 두어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사업장 인력 용역을 맡은 업체의 대표에게 정황을 담은 서류를 남기고 빌런에게 경고 이상의 인사 조치가 필요함을 전했다. 내가 소속된 공공기관은 민간 업체에 용역 발주를 했을 뿐 빌런과 피해자 등 종사자 직원들을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며칠간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빌런과 피해자, 모두가 각자의 소견을 적어 내는 서류 작성이 첫 번째 순서였다. 그 과정에서 이미 벌써 모두들 지친 듯 보였다. 단순히 말로 누군가에게 호소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사실상 쉬운 것이었다. 빌런을 포함해 같은 업무 담당자들은 나에게도, 기관장에게도 틈틈이 개인적 면담을 통해 자신의 입장과 당한 것들을 호소했었다. 개인마다 짧게는 근무 전 십 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 상당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억울함과 조직 분위기, 불편한 상황들을 토로했고 실제 옆에서 듣고 지켜보기에도 하루하루가 더 없이 불안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간은 버거운 일이었다. 며칠간을 연이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비슷비슷한 사건의 다른 정황들, 다른 버전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하나 모두 아주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 실이고 아니고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진실이었으니까. 참으로 진빠지는 일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관계자 누구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정도까지 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제나 빌런이 중심이 되어 불안이 증폭되었고 견디다 못한 다른 이가 사업장을 떠났다는 것.


일주일가량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분위기는 우리 발주처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음이 약한 피해자에게는 서류작성 자체가 일종의 2차 피해가 되어 아무것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고 다른 피해자 한 명도 인사조치 자체를 원하지 않아 최소한의 사실만을 기록하였다. 이러다가는 징계 검토를 시작하기도 전 또 다시 피해자들이 사업장을 떠날 것만 같았다. 결국 우리는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았다. 되도록 서로 잘 지내보는 것으로. 누구도 징계 없이. 그렇게 며칠간의 버거운 시간은 조사 아닌 면담으로 마무리 되었고 용역사 대표는 모두가 모인 상황에서 화합하고 잘 지내라는 거의 덕담에 가까운 말로 상황을 종료 시켰다. 한 차례 폭풍 같은 날들이 있었지만 그저 지나갔을 뿐임을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관련된 사람들, 특히나 피해자에 가까운 이들이 고통 받고 잠을 못자고 살이 빠지기까지 한 일들의 마무리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김빠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못되어 나는 발령을 핑계로 그 곳을 떠났다.


어쩌면 아직도 빌런은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소란 아닌 소란을 일으키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목격한 바 그것이 마지막이었을 뿐, 그 뒤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과 괴롭힘을 주었을지 모른다. 내가 경험했던 얼마간의 날들. 어수선한 분위기,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괴롭고 미안한 심정,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씩을 보냈던 그 시간들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결론만으로는 회의적이다. 적어도 내가 머물던 동안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으니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일을 맡긴 입장인 발주처, 그리고 담당자인 나로서는 고민 끝에 시도한 선택이었고 최선이라 여겼다. 내 경력과 같은 업무 경험이 더 쌓였더라면 조금 달랐을까. 아마 빌런을 포함한 여러 상황을 복합적으로 파악하고 피해자 측의 고통을 더 줄일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해 실행해야 하며 그 과정상 괴로움이 따른다는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갑질이라는 것, 빌런이라는 존재와 행동, 그로 인한 고통은 결국 사람으로 인해 빚어지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 버린(!) 일이다.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가치관과 경험, 성격과 성향을 갖고 있으니 누군가를 완전히,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사건, 상황은 아무리 훌륭하게 처리한들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모든 공공기관 종사자, 특히 담당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있을뿐이다. 각자의 관할(사업장이든 부서든 기관이든)에서 일어난 일, 벌어진 사건은 반드시 수습해야 한다는 것. 관공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운영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 가장 무난하며 적정한 해결 방법을 법적, 제도적 테두리 내에서 찾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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