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저런 부침들을 겪게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때에 꼭 끼어드는 원망하는 마음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두 가지 문젯거리가 있었는데 둘은 정말 어쩌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꼭 같은 비중, 꼭 같은 강도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살면서 같은 시기 전혀 다른 종류의 두 가지 문제가 번갈아 괴롭히기란 최초였으니 나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기묘한 종류의 괴로움이었다. 요약하자면 둘 중 하나는 금전적인 상황변화였고 다른 하나는 공공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절로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전보 발령 관련이었다. 물론 나와 가족은 전부터 두 가지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그 시기와 방법이 문제였다. 어찌 되었든 때는 닥쳐있었고 어찌저찌 수습을 해나가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예의 그 원망하는 마음이 온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서 스물스물 고개를 들이밀었다. 의식과 이성, 체면 등을 총동원하여 내리눌러 보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아주 깊은 저변에, 안개처럼 깔려있어 치워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심히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알고는(알고만?)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나 자신이 빚어낸 것이며 그 누구도, 어떤 대상도, 어떤 제도나 시스템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씩 뜯어보자. 앞서 ‘금전적 상황변화’라 완곡하게 미화하기는 하였으나 나와 내 가족은 하루아침에 살던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것도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닌 부동산 중개소의 일방 통보에 의해서였다. 놀라고 억울한 것도 잠시, 결국은 나가야 했다. 어떠한 강요도 없이 스스로 도장을 찍은 계약서에 그리 명시되어있으니 달리 저항할 근거도 없었다. 나와 남편은 고민 끝에 소유하던 것을 팔고 새로운 것을 사 버리기로 결정,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나 갑자기 맞닥뜨린 주택 거래라는 것은 좀처럼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끝을 알 수 없이 꼬여있었다. 누구나 조금만 둘러보면 알게 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주거지, 주택 소유와 임대라는 것이 거의 전 시민을 대상으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내 집 하나를 빨리 이사하기 위해서는 임대임차 관계가 얽힌 다른 2~3집이 옮겨가거나 내가직접 옮겨내야 한다는 것. 결국 우리는 이런저런 부대비용을 감수하여 출혈에 출혈을 동반한 끝에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옳은 결정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저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지 중 나아 보이는 것을, 덜 후회할 것 같은 것을 고른 것이었다. 저절로 원망이 꼬리를 물었다. 뒤늦게 공지해 준 부동산업자부터 소유자와 관리실측 직원들까지. 분노와 원망이 그들 모두를 향해 폭포처럼 일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강도, 설명할 수 없을 규모의 혐오와 비판이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감수해야 할 위험성과 피했어야 할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데다 급기야 반대로 판단했던 나 자신에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시원치 않은 촉에도. 깊은 원망과 불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언제쯤 내가 나 자신을 믿어줄 수 있을지, 나 자신과 화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안목을, 자신만의 세련된(!) 감식안을 갖추기를, 그래서 확신에 찬 주장과 안정적 선택을 하기를 바랐지만 나는 또 나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부족함과 조급함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심히 유감스러웠다.
인사 문제는 원망이 더 극심했다. 이건 가족 공동체와 직접 관련이 없고 재산상의 문제나 다른 엮인 문제도 없는 일이다. 오로지 나 하나, 개인의 역량인데, 역량도 능력도 부실하기만 한 나로서는 거의 콤플렉스에 가까운 감정으로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적정한 때에 다른 조직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 적정한 때에 파견을 종료하고 복귀하지 못했던 것, 적극적이고 활달하지 못한 성격과 개인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까지.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조건들이 공공기관 종사자로서는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이 그러하기도 했다. 즉 원망의 상대가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뭘 어쩌겠는가. 내가 나인 것을. 아무리 볼품없고 부실해 보이는 ‘주사’일지언정 절대신 앞에 이를 때까지는 내가 나인채로, 즉 나 자신과 한 팀이 되어 보듬어 가며 지낼 수밖에. 좋든 싫든 내가 나인 것을 부정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고치기 힘드니 되도록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행이 원망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고체화되어 있었다. 스스로 펼친 적이 없는 마음이지만 주섬주섬 원망을 주워 담아 보았다. 덤덤히. 애가 바닥에 흘린 반찬 마냥, 거실 바닥에 흐트러뜨린 장난감 마냥 몹시 피곤한 채로 덤덤히.<^^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