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6급일기 01화

# 의회유감

다 읽어보는 거 맞으시죠

by 장판

사무실 내의 모든 모니터가 켜진다. 얼마간 정적이 흐르고 다시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부서 안의 80여개 눈동자가 모두 모니터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개의 귀는 들려오는 소리에 고정되어 있다. 평소 일과 시간보다 통화량은 현저히 줄어들고 직원이나 간부나 자주 자리를 비우던 이들도 이날만큼은 재석한다.


다름 아닌 의회 회기, 각 사업 단위들의 소속 상임위 개최일 부서 풍경이다. 지자체 도입 이후 전국 모든 기초·광역 단체들은 각 지자체의회 감시와 지적을 수시로 받는다. 집행부가 수행하는 크고 작은 사업들의 예산결산을 포함해 행정재산 관리를 위한 각종 심의, 행정 행위에 따른 절차 등에서 중요하다 싶은 모든 것들은 의회의 동의(또는 보고)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삼권 분립, 행정 입법 사법의 분리. 좋은 말이다. 좋은 말이지만 당장 집행부로서는 한두 가지 불편한 것이 아니다. 뭔가 사업을 진행하려 하면 대부분 분기별로 이뤄지는 의회의 사전 동의, 보고를 거쳐야 하는 통에 미리미리 대부분의 계획들을 수립해 둬야 한다. 중요한 시기 여기저기 전화 받고 민원 업무하고, 상급자들(적어도 3단계) 보고를 하다 보면 한두 주는 그냥, 한두 달도 쉽게 후루룩 가버리니 집행부로서는 여간 버거운 일 이 아니다. 오죽하면 지방관공서 종사자들 사이에는 의회만 없어도 살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중앙부처 직원들도 상임위가 …) 가장 심한 것은 예산.


돈 앞에 장사 없기로는 민간이나 공공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있어야 사업이 돌아가고 일을 하든 시키든, 계획하든 할 수 있다. 직간접 경험한 바로는 행정부와 의회의 마찰 역시 대부분 예산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차년도 예산안을 인정할 것인가. 깎을 것인가. 연말이면 초민감 상황이 되고 11월 말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산안 심의는 의회 권한 체감의 핵심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예산, 집행부 입장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개별 의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사업들은 매우 쉽게 삭감 당한다. 아예 안 주는 것도 아니어서 심할 때는 계획한 예산의 절반만 주어 전액 삭감보다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여인이 진통 끝에 아이를 낳듯 7월 말부터 예산과를 중심으로 집행부에서 자체 검토한 예산안은 이미 상당한 사전 검토 필터를 통해 세워졌음에도 상임위에서는 갖가지 요구 자료를 추가로, 또 추가로 요청한다. 현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전 사업 보고가 전제 되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내년도 사업에 대한 필수 불가결함을 절절히 호소해야 한다. 사실상 연간 거의 정해져 있는 세수 안에서 무엇을 진행하고 줄일 것인가는 집행부 역시도 고민하는 사항이다. 이미.


하지만 지난한 회의 내용을 모니터링 할 때면 적잖게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정말 저렇게 관심이 있으신 것일까? 그저 공식석상에서 한두 마디 말을 보태려고, 존재감을 드러내시려고 말을 위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방금까지 앞선 의원의 질의와 요청에 충분히 답한 것 같은데 유사한 질문에 지적을 조금 섞어 다시 묻는다. ”000 본부장님, 해당 현장에 가보셨습니까? 언제 가보셨죠? 해당 공간에 빛을 쏘고 쇼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시는 건가요? 5년치 사업 결과보고 가져오시고 지난 5년간 개최한 지역 축제와 지원 내역, 사업 보고를 요청합니다! 관련된 모든 자료 제출하세요.…자료는 이미 제출했는데. 쩝… 애꿎은 복합기를 돌려본다. 복합기 돌아가는 소리마저 지친 것 같다. 17부. 나오면 스테플러 찍기가 무섭게 얼른 들고 뛰어야 한다. 상임위장으로. 결산 때는 개회와 동시에 요구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선 잔뜩 요구부터 하고 보는 의원님들도 상당하다. 제대로 보시는 거 맞으시죠. 이 긴 하루는 언제나 끝날까.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라. 벌써 끝날리는 없는데 무슨 일이지? 복합기 앞에서 다시 티비 화면으로 본다. 까만 화면에 하얀 두 글자가 보인다 정회. 19시까지 정회라… 예상대로 오늘 하루는 길어질 전망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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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