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기에

아이의 슬픔도 아이의 것

by HIHY

아이가 좋아하는 잠옷이 있다. 노란색 병아리 잠옷.

입고 있던 옷이 젖어서 갈아입으려 하는데 아이가 병아리 잠옷을 달라고 했다. 병아리 잠옷은 그제 입어서 아직 빨래 바구니 안에 있었다.

"♡♡아, 아직 병아리 잠옷을 못 빨았어. 이따 꼭 빨아줄게. 오늘 밤에 입자."

"싫어. 지금 빨면 되잖아."

"지금은 세탁기로 이불 빨고 있어. 이불 다 빨고 나서 병아리 잠옷 빨아줄게."

"싫어. 병아리 잠옷 입을 거야."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씩씩거렸다.

나는 다른 옷을 꺼내어 아이 옆에 놔두었다.

"이거 입자."

"싫어! 안 입을 거야!"

아이는 팬티만 입은 채 침대에 엎드려 울었다.

이럴 땐 계속 말해봤자 소용없다. 아이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럼 ♡♡이가 맘에 드는 옷으로 골라서 갈아입어. 엄마는 거실에 있을게."

아이는 10분 정도 자기 방에 있다가 옷을 안 입고 거실로 나왔다. 울음도 멈췄고 씩씩거리지도 않았다.

"엄마가 갈아입혀 줄까?"라고 물으니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

나는 아이 방에서 옷을 가지고 나와 아이에게 입혀주었다.


고작 옷 하나로 우는 아이가 이해 안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것도 아이에겐 중요할 수 있다. 아이는 정말 너무나 병아리 잠옷을 입고 싶었나 보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은 그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옷을 못 입게 되어 슬픈 마음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아이를 혼낼 필요는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옷을 못 입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릴 뿐.



우리 아이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정말 좋아한다. 바이킹도 맨 끝에 타고 꽤 빠른 롤러코스터도 잘 탄다. 하지만 아직 키 때문에 못 타는 놀이기구가 많다. 아이가 뱅글뱅글 도는 놀이기구를 가리키며 저걸 타겠다고 마구 뛰어갔다. 하지만 키 130cm가 넘어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였다. 키를 재보면서 이만큼은 더 커야 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놀이기구들을 타러 갔다. 회전 그네, 롤러코스터, 빙글빙글 도는 컵 등 여러 놀이기구들을 타며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면서 키 때문에 타지 못 했던 그 놀이기구 앞을 지날 때마다 아이는 어김없이 말했다.

"엄마 나 저거 타고 싶어." "저거 타고 싶다." "타고 싶은데."

아이는 떼를 쓰는 게 아니었다. 아이도 자신이 못 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태워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계속 표현하는 것이었다. 못 타는 거 알지만 타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타고 싶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잊을 텐데 자꾸 그 놀이기구가 보인다. 그러니 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길 수밖에. 아이가 그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 우리 ♡♡이 저거 타고 싶은데 못 타서 아쉽다."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그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그렇구나", "그치", "타고 싶지" 공감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솔직히 "그만 좀 말해.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얘기한다고 놀이기구 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마음을 표현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니까 막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아이의 마음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정 듣기 힘들면 다른 화제로 전환하거나 그 놀이기구를 보지 못하도록 그 놀이기구 근처에 가지 않면 된다.



아이가 속상해하고 슬퍼하면 부모는 달래주어 얼른 그 슬픔을 없애주고 싶다. 아이가 어릴 땐 사탕을 주거나 만화를 보여주며 쉽게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번 울음이 터지면 내가 뭘 해도 잘 달래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달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가 속상해서 눈물이 날 땐 그저 속상하구나 그렇구나 하고 아이를 안아준다. 아이가 안기지 않으려 하거나 혼자 있고 싶어 하면 혼자 있게 해 준다. 아이의 슬픔은 아이의 것이다. 눈물을 다 흘린 후 아이 마음에서 슬픔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 스스로 감정을 소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나는 도 닦는 법을 배운다. 아이의 감정에 내 감정이 휘둘리지 않도록, 모진 풍파에도 나의 마음이 고요하도록,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고 좋은 말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오늘도 도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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