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다가 학교가 끝날 시간에 비가 오고 있었다.
아들에게 우산을 전해주러 학교 앞으로 갔다.
많은 부모님들이 교문 앞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아이들은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부모님을 찾았다.
우리 아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으며 달려왔다.
아들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우산을 하나씩 쓰고 걸어갔다.
갑자기 내린 비였기에 우산이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손으로 신발주머니로 가방으로 비를 막으며 뛰어갔다.
그런데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체구가 작은 걸로 봐서는 1학년인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비를 맞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너무 추울 거 같아서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다가갔다.
"우산 없어요? 아줌마가 씌워줄까요?"
"아, 네."
"어디로 가요?"
"OO아파트요."
"그럼 아파트 앞까지 씌워줄게요."
아들은 태권도 학원에 가고 나는 그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걸어가면서 아이의 발을 봤는데 한겨울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비 때문에 양말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양말이 다 젖었네. 안 추워요?"
라고 물으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맨날 이래요."
아이를 아파트 앞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는 왜 이 추운 날 샌들을 신고 있었을까?
왜 차가운 비를 피할 생각도 안 하고 맞고 있었을까?
맨날 이렇다니 무슨 뜻인 걸까?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너무 차분했고 그래서 더 쓸쓸해 보였다.
겨울에 크록스를 신는 아이들도 종종 있는데 그 아이도 그 샌들을 좋아해서 신은 걸지도 모른다.
'우산 없는데 그냥 비 맞지 뭐.'하고 걸어가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무기력한 발걸음과 뭔가를 체념한 듯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학교나 경찰에 말해야 하는 건가 하다가도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 아이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작년 겨울 일을 이제야 이렇게 글로 쓰고 있는 건 '어린이라는 세계' 책을 읽고 그때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처럼 비가 오는 날 모르는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준 경험이 있었다.
저자에게 그 일은 친절을 베풀어서 기분 좋았던 일이었다.
비슷한 경험이었지만 그날이 나에게는 걱정과 혼란으로 뒤섞여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