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지인이 초대한 결혼식장에 갔다 왔다. 입구서부터 식장 안까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꽃들을 꾸며 놓으리라 작정한 듯, 어느 곳에 시선을 두던지 꽃이 있었다. 결혼은 꽃길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면 결혼으로 들뜬 신랑신부에게 무례가 될까. 결혼 축가가 있었고 주례사가 있었는데도 결혼식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참여한 하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우르르 연회장으로 몰려갔다.
결혼식은 드디어 어른으로써 첫 발을 띠겠다는 계약식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은 좀 경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불편한 예식옷을 입고 긴 시간 많은 하객들 앞에서 땀을 흘리고 서 있어야 그나마 결혼식에 대한 의미를 건질 수 있다. 그만큼 선언은 실행하기 어렵고 각오가 필요하고 책임이 동반된다. 30년 가까이 각자의 틀로 살아온 삶들이 합쳐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앞으로 수많은 실수와 실망스러운 체험들은 힘들었던 선언식의 시간들로 인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예식장은 화려한 곳보다 시간을 넉넉히 주는 곳을 골라야 한다. 고리타분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법륜스님은 결혼을 하려는 상대를 고를 땐 룸메이트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설렘보다 우정을 믿으라는 뜻이다. 젊은 날 배우자의 선택은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한 일생의 가장 큰 투자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나 품성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혼해서 하나씩 고쳐가며 살겠다'는 표현은 굉장히 위험하다. 처음부터 충분히 맞는 짝을 구해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성공하려면 아내를 잘 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내도 남편을 잘 두어야 한다. 즉 좋은 가정은 현명한 배우자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해도 삶은 그리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평생 한 사람과 살다 보면 가슴 두근거리는 열정은 변하게 마련이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다. 깊은 우정을 느낄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과 배경이 비슷하면 괜찮다고 본다. 그 가치관을 존중하겠다고 결심이 섰을 때 결혼해야 한다.
'완전한 결혼_조셉 래시티'에서 남편과 아내가 결혼관계를 통해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남편이 원하는 것 = 칭찬, 성적 만족, 내조와 여성적인 매력
아내가 원하는 것 = 애정, 대화상대, 경제력과 가정에 대한 헌신
결혼 34년째인데, 정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내가 만족하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소리치며 화내는 대신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연민이 생긴다. 그리니 절대 자기 멋대로 배우자의 결정과 생각을 결론짓지 말아야 한다. 싸우더라도 내 생각, 내 마음만 전달해야 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것이 가치관 존중의 첫 번째다. 우리는 남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법과 방향을 못 찾아 다투기도 하고 끝내 이혼도 한다.
결혼은 배우자와만이 아니라 결혼과도 '결혼'한 것이란 생각을 해야 한다. 결혼관에 충실하고 그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