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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내 가슴은 가마솥

가족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관계가 아니다


지난 주말, 가슴이 답답해 가까운 호수를 찾아 바람을 쐬다 돌아왔다.  곧 명절이 온다.


누구에겐 따뜻하고 사람이 기다려지는 명절이 우리 집은 괴롭고 힘든 시간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님과의 얽힌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알아달라고 떼쓰는 노인의 출연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다.  내가 가슴이 답답한 이유는 어리석은 사람을 여전히 상대해야 한다는 피곤함뿐이다.


나는 사람냄새가 늘 그리웠다.  나는 친정에서 미운오리새끼처럼 세 번째까지 딸이라는 내 잘못도 아닌 잘못으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억울했지만 착한 아이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어쩌면 생존이었다.  친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사랑을 나는 보상받아야만 했다.  내가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했다.  


친정엄마는 맏며느리셨지만 홀시어머님을 모시지도, 끝내 제사를 지내지도 않으셨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부갈등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었다.  삶의 동아줄은 돈밖에 없는 신념의 두 여인의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연을 끊었다.  이후 친정엄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팅되어 성당을 다니셨다.  엄마의 마음에는 평화가 왔지만 나의 명절은 썰물이 하루아침에 친척들을 몰고 사라진 허전한 공터였다.


나는 마음에 들었던 신랑감이 시골남자라 좋았다.  형제 많은 집의 둘째 며느리는 위아래로 동서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동서들과 시골장터를 구경하며 제수용품을 구입하고 남은 시간엔 순대골목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을 거라 상상하니 신났다.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과일을 깎으며 남자들은 먹기만 하느냐고 투덜거리지만 나는 하나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연애 때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내게 다짐을 받았다.  시골 본가에서 큰형과 잘 지내고 있는 어머니셨다.  효자라는 생각에 남편감 점수가 더 올라갔다.


결혼을 하니 나의 꿈은 허상이었다. 그리 많은 것을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소박한 소망마저 쉽지가 않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골은 없었다.  남편이 끌린 이유는 배경도 심성도 아닌 바로 나의 모습과 같아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성장과정과 남편의 성장과정이 사연만 다를 뿐 유사한 형태였기 때문에 끌린 것이었다.  나의 도피처는 없었다.


시어머님은 기댈수록 나를 외롭게 만드는 분이셨다.  나는 그 냉정함이 서운해 결혼에 대한 회의감으로 몸서리치는 시간들이 낙엽처럼 쌓여갔다.  그러다 어느 날 내 감정을 추스르며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기대하면 안 되는 분이라고.  몸도 마음도 굳어진 분이라고.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제야 나는 시어머님을 제대로 보고 있다.  시어머님도 결국 나와 같은 처지였다는 것을. 아니 시어머니는 나보다 더한 환경에 처해 있었음을.  그녀가 왜 그렇게 독하게 삶을 바라봤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이 다섯을 낳고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를 따뜻하게 받아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었음 깨닫고 절망했을 그림이 그려진다.  그녀는 힘든 삶에서 구출해 낼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한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가족은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아니로구나.  가족이란 누구도 어쩌지 못할 애증으로 얽힌 관계일 수도 있고, 가장 치졸하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불가사의한 관계가 될 수도 있구나.  


가장 나약한 인간은 비열한 증오를 숨기고 있어서 한 사람의 생이 끝나도 전투력을 잃지 않는다.  상대의 죽음으로 그는 손쉽게 우월한 승리를 자신한다.  얽혀 숨죽이고 살아가던 가족관계의 거미줄을 스스로 끊고 수문을 열어 감정의 물을 방출하기에 이른다.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인간이다.



우리는 가족관계에 대해 오해를 하며 산다. 가족은 나의 모든 기대치를 걸어도 되는 관계가 아니다.  누구도 가족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완벽히 해낼 수 없다.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상대에겐 시어머니노릇, 며느리노릇, 아내노릇, 가장노릇, 자녀노릇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기 역할만 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족도 작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느슨한 간섭으로 상대의 거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얻는 기대치의 실망은 아무리 하소연해 봐야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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