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차례음식은 꼬박 이틀을 준비해야 완성된다. 이제는 이력이 나서 나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로 척척 해내지만 문제는 체력이다. 틈틈이 목과 허리를 스트레칭하지만 시어머님을 케어할 때 손상된 팔꿈치 엘보부위는 여지없이 욱신거린다.
나는 명절과 기제사 후 상흔처럼 따라붙는 통증보다 쓸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모이는 형제들의 시끌 법석한 웃음과 넉넉한 음식의 소비가 주는 만족감이 없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듬해 코로나가 터지자 자식들은 든든한 구실을 명분 삼아 발길을 끊더니 이유만 다를 뿐 지금껏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구심점이었던 어머니의 부재는 예견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실 서운해할 것도 속상해할 일도 없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바다에 빠졌다면 허우적대지만 말고 차라리 바다 깊숙이 들어가 진주를 캐보라고 말씀하셨다. 삶의 성찰은 피하지 않고 수용한 사람만이 겸허하고도 냉정한 세상을 대처하게 만드는 법이다. 절망과 심연의 끝에선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그저 묵묵히 내가 믿는 삶의 방향대로 책임감 있게 뚜벅뚜벅 걸으면 된다.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살고 있으며 따뜻한 가정을 위해 헌신할 따름이다. 불행이라 보이는 불씨에 집착하는 것은 옹졸할 태도이며 보잘것없는 번민을 갖게 될 뿐이다.
계산적이지 못한 내가 형님을 대신해 명절준비와 시어머님 케어를 모두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 땐 둘째 며느리라는 억울함과 모든 관계에서의 기대치도 버림을 의미했다. 그런 내면의 합의를 거쳤음에도 매번 제사상을 마주할 때마다 남편의 형제가 오지 않는 것을 야속해한다면 나에 대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생전에 시어머님과 감정적 합의를 하지 않은 노인의 반갑지 않은 출연이 예견되는 명절이란 점은 억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의식과 고정관념이 고착화되어 고집처럼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대화 안 되는 노인을 상대한다고 생각할 때의 문제일 뿐이다.
어찌할 것인가. 답답하지만 이마저도 제 풀에 꺾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결국 불행의 불씨는 불행을 다루는 나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행의 원인을 규명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올 명절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계 가득했던 전투갑 노인의 출연은 없었다. 오지 않아 궁금했지만 궁금해하고 싶지 않은 분이었기에 바로 지울 수 있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던 큰 시누이가족이 뜻밖에 명절을 쇠러 찾아와 그동안의 나의 노고를 고마워하며 우리의 삶을 격려해 주셨다. 나는 모처럼 정성껏 준비했던 명절음식을 나눠 먹었고 전과 송편을 싸드리며 배웅을 했다. 지극히 평범한 명절풍경이었다. 조용한 물결처럼 흐르는 명절의 시간의 배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이튿날은 동생네로 가 친정아버지를 뵈었다. 아내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아버지는 아들의 집에서 웃으며 안정되게 살고 계셨다. 삶은 슬픔을 견딘 사람에게 그제야 웃음을 주나 보다.
마지막 일정으로 친정엄마가 계시는 파주천주교묘지로 향했다. 걱정했는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고 조용했다.
다행이었다.
남편은 명절 준비로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해주겠다며 아이들과 구봉도전망대로 향했다. 밀물로 인해 바다가 무서울 정도로 풍성했다. 해안가로 향하던 우리는 밀려오는 바다의 기습에 놀라 약수터 기슭으로 선회했고 땀을 흘리며 돌아 돌아 전망대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전망대에는 석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파도가 넘실대고, 석양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화려한 풍광이었다. 자연의 황금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듯 뽐내는 석양의 황홀경을 지켜보면서 문득 나는 나의 삶을 조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발갛게 익은 남편과 아이들이 내 옆에서 밝은 표정으로 낙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소중한 가족을 얻으려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은 고통으로 단념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