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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아들과 동지팥죽 만들기

추억의 절반은 음식 안에 있다





언젠가는, 당연히, 아무도 내가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도널드 홀




12월이 가기 전에 남은 연차를 소진해야 하는 작은 아들은 요즘 집에서 나와 함께 있다.  작년엔 혼자 해외여행을 간다고 해서 조금 놀라게 하더니(한 번도 혼자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올해는 엄마와 함께 쉬면서 집안일을 배우고 싶단다.  


요즘 부쩍 연애에 관심이 많은 것이 기본적인 집안일을 배워두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나는 추측하고 있다.  이제는 여자들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이고 대부분 결혼을 해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남자들도 집안일을 배워두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혼생활에 적극적인 협조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어필되어 남편감으로 낙점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요즘 작은 애는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시장도 같이 가서 장도 보고 시장바구니도 들어준다.  식재료 손질에 재료 다듬기, 칼질, 찌개는 물론 손빨래(요즘 강추위에 베란다 배수관 얼까 봐)도 힘 있게 해 준다. 손 힘이 좋으니 칼질도 제법이고 손빨래도 꼼꼼하게 한다.  무엇보다 집안일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이 소득이다.  


'아빠! 엄마, 하루종일 쉬질 않으셔요!'  저녁 식탁에서 식구들이 작은애의 탄성에 와장창 웃음이 터진다.  당연하게 적응했던 집안의 모든 일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들이라면 이번 연차소진은 성공이다.  여자들은 해결보다 공감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동짓날이라 팥죽을 하려고 적두를 꺼내니 어느 틈엔가 부엌으로 달려와 당연히 자기도 하겠단다.  팥죽을 만들겠다고?  뭐 이런 것까지 하려 하나 싶었지만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파스타 대신 팥죽 만들어 드릴까요?' 말하는 아들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진다.  


동짓팥죽은 번거로워 보여도 사실 만들기 쉽다.  


1. 적두 500g 여러 번 씻은 뒤에 압력솥에 물 1리터 정도 붓고 뚜껑만 덮어준 뒤 5분 정도 끓인 뒤 소쿠리에 건져내어 물로 씻어 떫은맛을 제거한다.

2. 씻은 적두를 압력밥솥에 다시 넣고 물 1.5리터 정도 붓고 뚜껑을 완전히 잠근 뒤 센 불로 10분 끓이다가 중불로 10분, 그리고 불을 끄고 뜸을 들인다.

3. 압력밥솥에서 끓을 동안 새알심 만들기(찹쌀 7: 맵쌀 3)

4. 뿔은 적두는 소쿠리에 붓고 주걱으로 물 1리터를 간간히 부어 주며 껍질만 남기고 으깨며 팥물을 내린다.

5. 들통에 팥물을 끓이다가 맵쌀 풀린 것 넣고 죽을 만든 뒤 끓으면 새알심 넣고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다.  마지막에 소금으로 간을 보면 끝이다.

6. 팥물은 식으면 응고가 되기 때문에 끓을 때 주르르 흐르는 점도 정도가 좋다.




사 먹으면 쉽게 잊힐 끼니지만 함께 과정을 나누면 서로의 기억에 남는다.  아들이 여자친구와 팥죽을 만들며 오늘 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답습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 혼자만의 기억이 유전처럼 이어지겠지.  아들과 만든 동짓팥죽을 한 대접씩 퍼서 식탁에 놓고 마주 보며 먹었다.  새알심을 넣을 때 튄 팥죽이 아들 흰 옷에 묻어 있다.  맛있다며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추억의 절반은 음식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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