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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문명의 규율은 결코 단단하지 않다




먼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은 중세 기독교에서 언급되는 3대 악마 중 가장 높은 서열로서 교활함과 악랄함보다는 보다 더럽고 본능적인 형태인 악을 상징하고 있다.  즉 인간 본연의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부패와 파괴, 타락, 공포에 몰두하여 적용된 악마다.  이 소설에서는 '잭'이 사냥한 돼지머리가 장대에 걸려 파리와 구더기가 꼬여 썩고 있는 것을 본 소년(사이먼)이 파리대왕으로 착각하여 대화하던 초자연적인 장면을 의미하고 있다.


소설은 핵전쟁의 위기라는 전체적인 배경 속에 영국은 25명의 어린 소년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던 중 무인도에 비행기가 불시착되면서 우화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의 나이는 5살~ 12살까지인 소년들(소녀가 한 명도 없다)로서 완벽한 사회적 교육을 받은 이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몸에 밴 조직성과 사회성을 바탕으로 생존과 구조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 추측가능한 소재로 흥미롭게 진행된다.  이 소설로 윌리엄 골딩은 198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처음에 그들은 문명에서 배운 대로 조직적으로 리더를 선출하고(소라껍데기 나팔로 아이들을 소집하던 가장 성숙하고 잘생긴 '랄프'), 그의 지시에 따라 봉화를 통한 구조활동, 사냥, 집짓기, 요리하기 등 생존에 필요한 행동들을 스스로 만들고 분배하지만 그룹의 리더자리를 노리는 소년 '잭'으로 인해 섬생활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랄프는 오로지 구조를 위한 활동에 전력을 기울이지만, 잭은 사냥을 통한 생존과 자기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대치의 의미는 '구조'와 '생존'이라는 화두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즉 이성(문명)과 본능(본성)이라는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실험하는 잣대로도 읽을 수 있다.


인간이기에 이성이란 도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판단하겠지만 그렇다고 본능이 하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능은 인간의 기본욕구이며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이성이 과연 가치로써 존재할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설정처럼 이렇게 무인도에 갇혀있다던가(언제 구조될지 막연한 두려움), 섬에 흉흉한 소문(괴물 출현)이 어린 소년들 사이에 공포로 자리 잡는다면 이성적인 사회적 단합을 이루기는 힘들 것이라 본다.  


섬에 최초로 자리 잡을 당시엔 '랄프'의 민주적 리더십에 순응하던 아이들이지만, 점차 괴물출연(조종사 시체)의 공포가 의지심 약한 아이들을 동요시키고 '힘'의 능력을 발휘하는 잭의 권력구도 속으로 점차 빠져들게 만든다.  힘의 리더로 교체된 잭의 조직(사회) 들은 야만적(힘) 능력을 통해 괴물출현이라는 공포를 또 다른 희생물로 진압하며 권력을 장악한 게 된다.  


멧돼지를 지나치게 잔인하게 죽이는 과정묘사와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흡수과정 그리고 다른 소년들을 헤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행동들은 마치 파시즘의 느끼기에 충분하다.  잭이 지키려는 권력의 광기는 랄프의 주변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결국 리더 '랄프' 하나만 남기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어른들의 '해군'에 의해 아이들이 발견되며 이야기는 끝난다.  잭과 추종자들이 랄프를 고립시키기 위해 섬에 불을 낸 대화재가 봉화의 구조활동으로 비쳐 해군의 발견으로 구조된 셈이다.


해군(어른)은 섬에서 원시인차림으로 아이들을 쫓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전쟁놀이를 했다고 생각한다.  랄프를 죽이려 뒤쫓아온 소년들도 어른들을 만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진한 아이들로 변해 오열한다.  전쟁의 끝이자 문명의 복귀를 의미했다.


저자 윌리엄 골딩이 소설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온 문명과 역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능(처한 환경에 따라)에 의해 한순간에 '파리대왕(악의 시점)'으로 전환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고전은 읽을수록 현재의 시점과 대비되어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을 남기는 책이다.




<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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