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그 어떤 아름다운 과거도 현재만 못하다


시간은 '기브 앤 테이크'를 잘한다.  우리에게서 늘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채워준다.  가져가는 순서는 랜덤이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먼저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가장 마지막에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후 그 빈자리를 더 소중한 것으로 채우거나 그대로 비워두는 것, 아니면 가차 없는 것들로 의미 없이 채우기만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만약 내가 중증 난치질환을 진단받기 전인 건강한 20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티켓이 한 장 주어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나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시간이 내게서 가져간 건강은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딸이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 이웃분의 출간소식은 내 일처럼 기쁘다.  먼저 독자들의 소감을 기다리는 심정은 차치하고 출간에 이르기까지 집필 외에 수많은 고충을 마친 해방감을 먼저 축하드리고 싶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있다고들 말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저질 체력이다.  그냥 약골이라는 뜻이 아니라 중증 난치질환인 '강직성 척추염'을 평생 끌어안고 살기 때문이다.  중증 난치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덤덤히 기록한 내용은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벅찼다.


2주에 한 번씩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으며 생활하는 내 몸은 정확히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반응한다.  주사를 맞기 4일 전부터는 소염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약을 안 먹고 버티면 육체 통증에 더해 우울감까지 추가된다.  무모한 도전임을 깨닫고 후회를 하며 약통을 여는 것을 2주마다 반복한다.  주삿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오면 3일 정도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피로감이 심하고, 이후 일주일 정도는 컨디션이 괜찮다.  최근 몇 년간 사실상 한 달에 절반만이 상태가 정상인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을 볼 때 이마와 눈을 가장 먼저 보는 것처럼 나는 책을 펼치기 전에 제목을 유심히 한 자 한 자 새기듯 담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작가가 책 전체의 내용을 심혈을 기울여 한 글자 내지 한 문장으로 함축해 놓은 의미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제목을 자기소개로 할애했다.  책 제목을 나름대로 풀이해 보면 한 달에 절반을 육체의 고통과 씨름하면서도 상급 종합병원의 치과 방사선사로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행복'까지 야무지게 챙기면서.  


이 책은 일련의 에세이들처럼 굴곡지지만 소소한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져 있다.  그가 상급 종합병원에 정규직이 되기까지 과정, 근무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환자들 이야기, 소중한 아내를 만나 딸을 갖게 되고, 아이가 혹여나 자신의 난치성 병명이 유전될까 노심초사하던 이야기, 딸아이가 자신과 같은 원추각막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끼게 된 속상하던 이야기까지 쭉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하나의 출구로 몰고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것은 '고통 속에서 합리적 행복 찾기'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공평한 곳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이 저절로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고통은 훈련을 통해 습관처럼 다스릴 수 있다.  인간의 각성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인내의 한계만큼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뇌는 일상에서 생각하거나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  마음과 인체의 상호작용을 간과한 선지자들은 그래서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은 행복하기 위해 악을 쓰며 생존하는 어두운 글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가 있을까, 하는 허탈감마저 들 정도다.  합리적이고도 집요하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한다.


이 책은 그저 따뜻한 에세이 이상으로 만족감을 주는 그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따뜻한 정서와 정직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려는 작은 의지를 느껴서 일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편법적으로 약간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귀찮아서 또는 당장 내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눈을 감는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사실 별거 아니다.  불법으로 장애인 주차공간에 주차하는 차량을 집요하게 '낚시'촬영해서 신고하는 작가처럼 시민의 윤리 쪽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또 가난한 후배가 있다면 기꺼이 한 달 용돈이 축나더라도 내 지갑을 여는 작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작은 배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정의를 느낀다.


명리학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은 필연이라는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했다.  가벼운 인연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재능은 자신이 이끌고 싶은 신념(가치)이 만났을 때 발현한다.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카메라에 각인하듯 모두의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되고 살만한 세상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소소한 행복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따뜻한 정은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이 풍성해진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지금 아프지 않다 해서 영원히 아프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조금 일찍 고통을 만나 견디는 힘을 준 저자에게 그래서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 류귀복 저>


아래는 저자가 운영하는 브런치 주소입니다.

https://brunch.co.kr/@gwibok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