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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생활

단어는 당신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때 하는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복잡하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할 때 더 많은 단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한다.  진실을 말할 때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진실한 진술이 더 정밀하고 미묘한 차이를 잘 표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실한 진술에는 <깨닫는다>, <이해하다>, <생각하다>등 통찰과 관련된 단어가 사용되어 사려 깊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표현하는 글이나 언어에는 감정적 단서가 내포되어 있어서 사용하는 단어와 기능어를 보면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최근 '채상병 해병대원 사망사건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우리는 태연하게 거짓증언을 하는 고위공직자들을 만났다.  임성근 전 해병대 1 사단장은 해병대 채상병 순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해병대원 물속 수색작업을 사후에 알았다고 뻔뻔히 거짓말을 했다가 부하 장교인 이용민 중령의 증언으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거짓말과 진실의 차이는 기능어로 판결이 가능한 데, '나(I)'라는 단어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나'라는 단어는 정직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나라는 단어는 그 의미상 일종의 신원확인인 셈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말하는 사람들은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음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질문에 직답을 회피하는 행위도 거짓말의 증표다.  증인 선서 거부는 대놓고 한 거짓말이다.


또 '약속하건대(맹세컨데)'라는 수행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진술에 대한 진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면 좋다.  수행적 표현에 빌려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말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어는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잔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단어를 통해 그들의 사생활을 짐작하게 만든다.  기능어의 사용 패턴을 보는 것으로도 거짓말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거짓말할 때와 정직하게 말할 때 기능어를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자신이 그 말을 했음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나는>, <나의>와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반면 거짓말을 할 때는 자기 자신과 말하는 내용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 여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빌 클린턴대통령의 주장은 매우 놀라운 예다.


..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그냥 <회사> 혹은 더 나쁜 경우에는 <저 회사>, <그 회사>라고 말하고 동료들을 가리켜 <그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면 이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들 회사>가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직원들 스스로 직업적 정체성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회사> 직원들은 불행하게 일하고 이직률도 높다.




하루에 1만 6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각자의 단어 사용 스타일이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청문회나 기자회견에 있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하더라도 뭔가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나타내는 단어들 속 기능어는 행동의 지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컴퓨터로 언어 감별 연구작업을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능어가 환경, 지위, 인지능력 등 다양하게 표현하며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분석하는 과정과 도출해 낸 의견이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는 '기능어'는 나와 상대는 물론 세상을 조금 더 잘 알도록 도와줄 수 있는 힌트라고 말한다.  단어인식프로그램의 검증을 통해 정리된 내용이라 심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행복할 때는 구체적 명사를, 슬픔과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인지적 단어를 많이 쓴다.



감정 상태도 기능어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행복할 때는 구체적 명사를, 슬픔과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인지적 단어를 많이 쓴다.  긍정적 경험에는 '우리'를 많이 쓰고, 구체적이며 감정 공유 욕구가 높다고 한다.  반면 슬픔을 경험하고 있을 때는 전반적인 관심이 내면을 향하므로 '나'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대명사 '나 또는 저'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거나 주로 사용하거나 우울증에 빠져있거나 자살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의외로 슬픔이 극에 달했을 때는 '나'라는 단어를 훨씬 적게 사용하고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역시 적게 사용한다는 점은 꽤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부정적 감정은 무조건 나쁜 영향만을 줄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부정적 감정은 생각이 깊어지게 하고, 긍정적 감정은 우리를 행복한 바보로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를 슬픔의 바닥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을 타자화하여 바라보는 인지과정을 경험한 후 얻게 되는 깨달음 때문이 아닐까 해석한다.  그들은 자신의 고생담 내지 슬픔을 너무나 무덤덤이 말해 상대방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우울하거나 슬픔에 휩싸이게 되면 자신에게 닥친 심한 감정 기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인데,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게 한 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스스로 인과관계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반영하는 인지적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의 글쓰기를 돌아봐도 지난 30여 년간 일과 가정이라는 빡빡한 일상을 소화하면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고독 속에서 탄생한 글 속에는 나 자신을 타자화하며 바라본 인지적 사고가 많았다.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자신의 삶에 녹아내느냐에 따라 다르며 존중받아야 할 가치기도 하다.  삶은 마냥 해피할 수 없다.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위안을 찾는 방법 또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에는 그들의 심리상태가 녹아있다.  언어의 지문은 자신의 현재의 심리, 정체성, 사회적 지위뿐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의 안정성을 반영해 주는 일종의 심리적 거울인 셈이다.  



< 단어의 사생활 / 제임스 W. 페니베이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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