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마치고
부부는 20대에는 서로 사랑으로 살고,
30대에서는 서로 정신없이 살고,
40대에서는 서로 미워하고 살고,
50대에는 서로 불쌍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감사하고 살다가,
70대에 이르러서는 서로 등을 긁어 주며 산다.
부부간의 인연을 소개한 재미있는 글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의미 있다고 생각해 필사해 놓았었다. 글의 힘을 믿는 나는 심적으로 고통이 있을 때 위로받기 위해 필사해 놓은 노트를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삶이란 것이 중단되면 성립이 안되듯이 고통의 이유 또한 파헤치기보다 장기적 처방인 시간에 맡기는 것도 편안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글이다.
50대에 공감하며 필사한 이 글을 60대에 읽으며 또다시 공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폭풍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정점이 50대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마지막 고비를 현명하고 침착하게 대처한 사람만이 안정적인 60대를 맞이한다고 믿고 있다.
은퇴한 우리 부부는 하루 삼시 세끼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마치 이 소박한 끼니해결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온 기분마저 든다. 나는 삼시 세끼를 걱정하지 않는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인생의 치열한 경쟁의 원인은 안전한 밥상 지키기 아니었던가.
우리는 삼시 세끼 식사뿐만 아니라 하루 일정을 모두 함께 하고 있다. 산책이나 운동도 재래시장에 갈 때도 시장바구니수레를 끌고 같이 간다. 장본 식재료들이 담긴 수레를 끌고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은퇴 전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에 슬그머니 비교가 되어 웃음이 나곤 한다.
'결혼은 순간이지만, 부부는 평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평생 함께하는 부부관계에도 진화가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성숙단계다. 결혼이라는 계약이 사랑으로 시작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갈등과 인내라는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통과해야 둘도 없는 동반자라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다.
은퇴 후 남편은 하루 종일 아내의 동선을 지켜본 듯하다. 여자들은 집에 있어도 가만있지를 못한다. 티 나지 않는 소소한 일거리가 정돈된 집안의 결과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빨래를 개기 시작했고, 청소기를 돌렸다. 식사를 마치면 반찬통을 정돈해 냉장고에 넣었고 밥그릇은 싱크대에 넣고 밥풀이 말라붙지 않도록 물속에 담갔다. 이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올해 김장도 기꺼이 함께 해 주었다. 아니 한 해 한 해 나의 할 일을 더 많이 빼앗고 더 많이 해주려고 하는 마음을 보인다. 사실 김장은 배추 속을 넣는 마지막 과정이 있기 전에 힘쓰는 과정이 많이 내포해 있다. 김장을 마치고 몸살이 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올해도 남편 덕분에 김장이 수월하게 끝났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른 전리품처럼 김장통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다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부부의 60대는 서로의 노화를 지켜보며 사는 시기다. 배우자의 노화는 곧 나 자신이란 거울을 마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잠자리에 누우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주름을 펴보며 키득거리지만 내면에는 작은 슬픔이 요동친다.
우리 부부는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숙연해지는 마음 저변에는 현실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다정하게 잘 살아보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올해 김장도 맛있게 되었고 올 겨울은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