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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책을 멀리 해야 한다

자신만의 만족구간을 찾아야 한다


쾌락을 탐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면서도 늘 불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향락에 빠진 순간에도 걱정하죠. "이 즐거움이 언제까지 갈까?"


괘락의 바탕이 안정적이지 못하니 거기서 얻는 즐거움은 한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이들이 누리는 쾌락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쾌락조차 순수하게 즐거울 수 없는데, 스스로 비참하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어떻겠습니까?


- 세네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될 수 없다.



얇은 옷들을 장롱 깊숙이 넣으며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멀리 가을소년이 유혹하듯 부는 피리소리가 들린다. 엉덩이는 벌써 나갈 채비로 들썩인다. 책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본능에 어긋나는 요구다. 게다가 가을은 너무 짧다. 깜빡 실수하면 놓치기 십상이다. 근간(近間) 책을 읽지 않는 핑계가 아니다. 가을은 잠시 책을 멀리할 계절이다.



우물처럼 깊은 가을하늘에 솜씨 좋은 화백이 그린 그림 같은 구름에 시선을 하염없이 빼앗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물거렸던 시 같은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그때 가슴 설레며 노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정신 차리라며 이마와 뺨을 스치는 찬기 먹은 바람은 계곡물처럼 차지만 기분 좋은 환기다.



가을은 특별한 관광지를 찾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 어디서든 느낄 수 있다. 시선이 머문 곳 어디든 깊은 하늘이 있고 나무가 있다. 가을 나뭇잎이 꽃 이상으로 아름답다. 한 나무에서 봄과 여름을 함께한 이파리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다. 뜨거웠던 여름을 거둔 나무는 짧은 가을의 시간 앞에서 알몸둥이가 될 자신의 처지를 처연하게 단풍으로 마지막 포상식을 하고 있다.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이고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는 그들의 절박한 의식이다. 짧기에 발견하는 경험이다.







인간은 평가라는 삶에 최적화되어 살아왔다. 암묵적으로 통일된 잣대에 적응된 것이다. 자기 선택권이 박탈당한 삶은 어느 순간 타인과 동일한 만족 속에서 안정감을 갖는다. 유행하는 음식, 패션, 장소를 함께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지만 선택권만은 자기 의지여야 한다.



우리의 짧은 삶 속에서 '자기만족'이라는 감정을 나는 행복과 쾌락의 타협점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행복의 정점은 매번 갱신될 수밖에 없고 그 순간은 지극히 짧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계산법이 필요하다.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평정감이라야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예측 가능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하루가 짧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지만 만족하고 있다. 나는 계절에 맞는 식재료로 만들 반찬과 음식을 걱정하는 소소한 긴박함을 즐긴다. 언제고 느긋하게 펼칠 책들과 생각의 흩어짐을 적을 노트들이 위안처럼 곁에 있다. 그리고 산책을 하고 싶을 때 함께 하고 아내의 움직임의 속도를 맞춰주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런 안정된 패턴이 자리 잡은 일상에 안심하는 타입이었던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깨닫는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만족구간이 있다. 그것을 기어이 찾아야 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가을은 그런 자신의 만족구간을 찾아내기에 적기의 계절이다.



책상 앞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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