閣夜(각야) 서각의 밤(七言律詩)
대종 대력 원년(766) 겨울, 기주의 서각(西閣)에 머물 때 지음. 이 해 여름에 두보는 운안에서 기주로 옮겨왔다. 당시 사천에는 최간(崔旰)이 또 기병해 반란을 일으키고 토번이 준동하여 전란의 혼란이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보는 정건(鄭虔), 소원명(蘇源明), 이백(李白), 엄무(嚴武), 고적(高適) 등 친한 이들이 전후로 사망하여 더욱 침중한 우수에 사로잡혀 보냈다.
歲暮陰陽催短景(세모음양최단경) 세모의 시절 되어 날로 해가 짧아지는데
天涯霜雪霽寒宵(천애상설제한소) 하늘 끝에 서리 눈 개이고 추운 밤 찾아드네.
五更鼓角聲悲壯(오경고각성비장) 오경에 들려오는 북과 뿔피리 소리 비장하거늘
三峽星河影動搖(삼협성하영동요) 삼협에 비쳐오는 은하수 그림자 요동을 친다.
野哭千家聞戰伐(야곡천가문전벌) 전란으로 들판에 수많은 이들의 통곡 들려오니
夷歌數處起漁樵(이가수처기어초) 이족의 어초 노랫소리 몇 곳에서나 일어나리!
臥龍躍馬終黃土(와룡약마종황토) 제갈량 공손술도 끝내 누런 흙으로 돌아갔으니
人事音書漫寂寥(인사암서만적료) 인간사와 소식도 그저 그렇게 적막해 지고 말리.
* 음양(陰陽) : 일월(日月)과 같음. 세월의 뜻.
* 천애(天涯) : 두보 자신이 있는 기주(夔州)를 가리킨 것임.
* 오경(五更) : 일몰에서 일출까지의 밤 시간을 다섯 등분한 마지막 시간 단위. * 고각(鼓角) : 일출과 일몰 때 시각을 알리던 북과 호각 소리.
* 삼협(三峽) : 구당협(瞿塘峽), 무협(巫峽), 서릉협(西陵峽)을 가리킴. 기주(夔州)는 무협 인근임. * 영동요(影動搖) : 별빛이 요동치다. 《한서·오행지》에 한무제 때 별이 요동친 뒤 전란이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음.
* 전벌(戰伐) : 영태(永泰) 원년(765) 겨울에 성도윤 곽영예(郭英乂)가 최간(崔旰)의 공격으로 피살되었고, 이후 최간을 토벌하기 위해 기병한 백무림(柏茂琳) 등의 관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이어졌음.
* 이가(夷歌) : 기주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 이족(彛族)의 민가. 이 구절은 전란의 피해로 원주민이 물고기 잡고 나무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끊길 것이라는 의미임.
* 와룡약마(臥龍躍馬) : 제갈량과 공손술(公孫述)을 가리킴. 《三國志·蜀書·諸葛亮傳》에 의하면, 서서(徐庶)가 유비에게 “제갈공명이란 자는 누워있는 용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좌사의 〈촉도부(蜀都賦)〉에 “공손술은 말을 내달리고는 황제라 칭했다”(公孫躍馬而稱帝)는 구절이 있음. 기주에는 제갈량과 공손술의 사당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