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出塞 九首 전출새 9수(五言古詩)
현종 천보 11년(752)에 지음. 두보는 장안에 있었다. 당나라는 건국 초기에 변경의 소수민족과 선린우호 정책을 폈으나, 국력이 한껏 신장된 현종 대에 이르러서는 소수민족을 박해하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정책을 우선하였다. 이러한 정책에 기승한 장수들은 전공을 세우려는 야욕에 사로잡혀 전쟁을 획책했으며, 그로써 징병 역시 더욱 확대되었다. 시는 어느 병사의 입을 빌려 조정의 개변(開邊) 정책이 어떻게 평범한 한 개인의 삶에 질곡을 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戚戚去故里(척척거고리) 서글피 고향 마을 떠나가서는
悠悠赴交河(유유부교하) 아득한 교하로 나아간다오.
公家有程期(공가유정기) 관가에선 기한을 두고 있으니
亡命嬰禍羅(망명영화라) 도망가면 죄의 그물에 사로잡히리.
君已富土境(군이부토경) 임금은 이미 강토가 넓기도 한데
開邊一何多(개변일하다) 어찌 그리 변경 개척 잦기도 한가?
棄絶父母恩(기절부모은) 어버이의 은혜 내버려둔 채
呑聲行負戈(탄성행부과) 울음 삼키며 창 들고 줄지어 가네.
* 척척(戚戚) : 시름에 고달픈 모양.
* 유유(悠悠) : 길이 요원한 모양. * 교하(交河) : 교하군(交河郡)을 가리킴. 지금 신장성 웨이얼 자치구 투루판현 서쪽. 당대에 안서도호부 주둔지였음.
* 영(嬰) : 범하다. 저촉되다. 위반하다.
2
出門日已遠(출문일이원) 집문을 나선 날도 이미 오래어
不受徒旅欺(불수도려기) 무리에게 업신여김 당하지 않네.
骨肉恩豈斷(공육은기단) 골육의 은혜 어찌 끊으랴마는
男兒死無時(남아사무시) 사나이 죽음이야 때가 없다오.
走馬脫轡頭(주마탈비두) 고삐 느슨히 한 채 말을 달리니
手中挑靑絲(수중도청사) 손 안에서 퍼런 고삐줄 요동을 치네.
捷下萬仞岡(첩하만인강) 높다란 산등성이에서 잽싸게 내려와선
俯身試搴旗(부신시건기) 몸 굽혀 깃발 뽑아 드는 훈련을 한다.
* 도려(徒旅) : 도려(徒侶)와 같음. 군부대의 동료, 동행을 의미함.
* 주마탈비두(走馬脫轡頭) : 말이 맘껏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고삐를 조이지 않고 헐렁하게 한다는 뜻.
3
磨刀嗚咽水(마도오열수) 흐느껴 우는 농두수에 칼을 갈다가
水赤刃傷手(수적인상수) 칼날에 손 베어 물빛이 시뻘게지네.
欲輕膓斷聲(욕경장단성) 애끊는 물소리 귀 담지 않으려 해도
心緖亂已久(심서란이구) 마음 진작에 심란해지고 말았소.
丈夫誓許國(장부서허국) 장부가 나라에 몸 바치길 맹서했으니
憤惋復何有(분완부하유) 다시금 어찌 불만을 품고 있으랴!
功名圖麒麟(공명도기린) 공명 세워 기린각에 그려지리니
戰骨當速朽(전골당속후) 전장의 해골이야 금새 썪고 말리라.
* 오열수(嗚咽水) : 농두수(隴頭水)를 가리킴. 북조악부 〈농두가사(隴頭歌辭)〉, “농산의 흐르는 물, 우는 소리가 오열한다.”(隴山流水, 鳴聲嗚咽)
* 기린(麒麟) : 기린각(麒麟閣). 한선제 때 공신 18명 초상을 기린각에 걸어둔 고사가 있음.
4
送徒旣有長(송도기유장) 징병 장정 호송하는 우두머리 있으며
遠戍亦有身(원수역유신) 멀리 수자리 가는 이 내 몸도 있다오.
生死向前去(생사향전거) 죽으나 사나 앞길 향해 나아갈 테니
不勞吏怒嗔(불로리노진) 아전나리 성질을 부릴 필요 없다오.
路逢相識人(로봉상식인) 길에서 서로 아는 사람 만나니
附書與六親(부서여륙친) 집안 식구에게 편지를 부쳐 보내네.
哀哉兩決絶(애재양결절) 애닲아라, 서로 영원히 헤어졌으니
不復同苦辛(불부동고신) 다시는 고생도 함께 하지 못 하리.
* 장(長) : 징병 장정을 인솔하며 우두머리 노릇하는 아전을 가리킴.
* 육친(六親) : 부, 모, 형, 제, 처, 자.
5
迢迢萬里餘(초초만리여) 멀고도 먼 만여 리의 길
領我赴三軍(령아부삼군) 날 이끌고 군영에 이르렀구나.
軍中異苦樂(군중이고락) 군영 안에선 고락이 다르건마는
主將寧盡聞(주장녕진문) 주장이야 어찌 속속들이 알고 있으리?
隔河見胡騎(격하견호기) 교하 너머로 오랑캐 기병 보이더니만
倏忽數百羣(숙홀수백군) 홀연 수백 명의 무리 이루는구나.
我始爲奴僕(아시위노복) 나 이제서야 하찮은 졸병 됐으니
幾時樹功勳(기시수공훈) 어느 때에나 무공을 세워보려나?
* 삼군(三軍) : 군대를 가리킴. 본래는 전군, 중군, 후군의 군사 편제를 일컫는 말.
* 노복(奴僕) : 장군이 자기 이익을 위해 맘대로 부려먹는 하찮은 종과 같은 처지임을 말한 것임.
6
挽弓當挽强(만궁당만강) 활을 당기려거든 응당 강한 활을 당기고
用箭當用長(용전당용장) 화살을 쓰려거든 응당 긴 화살을 써야지.
射人先射馬(사인선사마)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아야 하며
擒敵先擒王(금적선금왕) 적을 잡으려면 먼저 왕을 잡아야 하네.
殺人亦有限(살인역유한) 사람을 죽일지라도 또한 한도가 있고
立國自有疆(립국자유강) 나라를 세울지라도 절로 경계가 있네.
苟能制侵陵(구능제침릉) 참으로 침략을 제지할 수 있다면
豈在多殺傷(기재다살상) 어찌 많이 죽여야할 필요 있으랴!
* 왕(王) : 적의 우두머리를 가리킴.
7
驅馬天雨雪(구마천우설) 하늘에서 눈 내릴 제 말을 몰아서
軍行入高山(군행입고산) 높은 산 속으로 군대는 행진을 하네.
逕危抱寒石(경위포한석) 차가운 바위 부둥켜안고 위태한 길을 지나니
指落曾冰間(지락증빙간) 겹겹 얼음 골짝 안에서 손가락 끊어지는 듯.
已去漢月遠(이거한월원) 고국 땅을 멀리 떠나왔건만
何時築城還(하시축성환) 어느 때에 성 쌓고서 돌아갈까나?
浮雲暮南征(부운모남정) 뜬 구름은 저물녘 남으로 흘러가건만
可望不可攀(가망불가반) 바라만 볼 뿐 붙잡고 올라 탈 수 없구나.
* 우(雨) : 동사로 쓰여 내린다는 뜻.
* 한월(漢月) : 중원 땅을 비유한 것임.
* 축성(築城) : 적을 격파해 전쟁을 끝내고 점령지에 성을 쌓는다는 뜻.
* 정(征) : 멀리 간다는 뜻이다.
8
單于寇我壘(선우구아루) 선우가 우리 진지 공격을 하니
百里風塵昏(백리풍진혼) 백리에 먼지 휘날려 어둑하구나.
雄劍四五動(웅검사오동) 몇 번이고 검을 휘둘러 치니
彼軍爲我奔(피군위아분) 저 적군들 아군에게 패해 도주하누나.
虜其名王歸(로기명왕귀) 명왕을 사로잡아 귀환해서는
繫頸授轅門(계경수원문) 목에 줄 매어 장군님께 바치고,
潛身備行列(잠신비항렬) 몸을 숨겨 대오 속에 들어가거늘
一勝何足論(일승하족론) 한 번의 승리야 어찌 말할 것 있나?
* 선우(單于) : 한나라 때 흉노의 수령을 지칭하는 말. 이를 빌려 다른 이민족의 수령을 가리기도 함.
* 웅검(雄劍) : 좋은 검을 가리킴. 본래 춘추시대 오나라의 간장(干將)이 만든 두 자루의 보검 가운데 하나.
* 명왕(名王) : 이민족의 우두머리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자를 가리킴.
* 원문(轅門) : 군영의 문을 가리킴. 이를 빌려 장수를 가리켜 말한 것.
* 잠신(潛身) :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
9
從軍十年餘(종군십여년) 종군한지 어언 10여 년 세월
能無分寸功(능무분촌공) 어찌 작은 무공인들 없을까 보냐.
衆人貴苟得(중인귀구득) 사람들 구차하게 상 받길 좋아한다만
欲語羞雷同(욕어수뢰동) 공치사하려다 남과 같아질까 창피하구나.
中原有鬪爭(중원유투쟁) 중원에서도 쌈질이 있다 하는데
況在狄與戎(황재적여융) 하물며 북쪽 서쪽 오랑캐 땅이겠는가!
丈夫四方志(장부사방지) 사나이야 사방에 뜻을 뒀으니
安可辭固窮(안가사고궁) 어찌 신세의 곤궁함 마다하리오.
* 뇌동(雷同) : 부화뇌동(附和雷同). 우레소리에 함께 하다. 소신없인 남이 하는대로 따라 한다는 뜻.
* 중원유투쟁(中原有鬪爭) : 통치계급 집단 내부의 싸움을 가리킴. 당시 이임보가 권력을 휘둘러 두유린, 왕증, 이옹, 양신긍 형제 등 여럿을 살해하였음.
* 적여융(狄與戎) : 북쪽과 서쪽. 본래 적은 북방 이민족, 융은 서방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임.
* 사방지(四方志) : 천하를 경영하거나 나라를 안정시킬 원대한 포부와 이상을 가리킴.
* 고궁(固窮) : 빈궁을 달게 여기며 절개를 잃지 않는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