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醉時歌 취시가(七言古詩)

by 오대산인

醉時歌 취시가(七言古詩)


현종 천보 13년(754) 봄에 지음. 시의 원주에 “광문관 박사 정건에게 드린다(贈廣文官博士鄭虔)"고 되어 있음. 정건은 시서화에 능해 현종이 삼절(三絶)이라 기린 인물이다. 750년에 국자감 광문박사에 임명되었으나 한미한 관직이라 매우 빈궁한 생활을 하였다. 두보 또한 근 9년간 벼슬도 없이 생활하느라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었으며, 그와 망형지교를 맺었다.


諸公袞袞登臺省(제공곤곤등대성) 여러 공들 줄줄이 어사대와 삼성에 올랐으나

廣文先生官獨冷(광문선생관독랭) 광문선생 유독 벼슬자리 낮고 보잘 것 없어,

甲第紛紛厭粱肉(갑제분분염량륙) 대저택에선 시끌벅적 고량진미 물리게 먹건만

廣文先生飯不足(광문선생반부족) 광문선생이야 먹을 밥도 넉넉하지 않다오.

先生有道出羲皇(선생유도출희황) 선생의 도덕은 복희씨를 뛰어넘었고

先生有才過屈宋(선생유재과굴송) 선생의 재주는 굴원 송옥을 능가하지만,

德尊一代常坎軻(덕존일대상감가) 덕망이 한 시대에 드높아도 늘 불우하였고

名垂萬古知何用(명수만고지하용) 명성은 만고에 드리울 만하나 어디 쓰이리!

杜陵野客人更嗤(두릉야객인갱치) 두릉 시골의 나 사람들은 더욱 비웃나니

被褐短窄鬢如絲(피갈단착빈여사) 걸친 베옷은 짧고 작으며 살쩍은 흰실 같은데,

日糴太倉五升米(일적태창오승미) 날마다 태창에서 다섯 되의 쌀을 사고

時赴鄭老同襟期(시부정로동금기) 때때로 정노인 찾아가 마음을 함께 한다네.

得錢卽相覓(득전즉상멱) 돈 생기면 서로를 찾아 나서고

沽酒不復疑(고주불부의) 술 사게 되면 망설임도 없거늘,

忘形到爾汝(망형도이여) 예절에 구애 받지 않고 너 자네라고 불러대며

痛飮眞吾師(통음진오사) 질탕하게 마셔대니 참으로 나의 스승이라네.

淸夜沈沈動春酌(청야침침동춘작) 고요한 밤 깊어갈 제 봄 술을 마시노라니

燈前細雨簷花落(등전세우첨화락) 등불 앞 가랑비가 처마에서 꽃처럼 떨어지고,

但覺高歌有鬼神(단각고가유귀신) 목청껏 노래하노라면 귀신이 돕는 듯 느껴지거늘

焉知餓死塡溝壑(언지아사전구학) 굶어죽어 구렁에 파묻힌다 한들 알게 뭐인가!

相如逸才親滌器(상여일재친척기) 뛰어난 재주의 사마상여는 몸소 그릇 씻었고

子雲識字終投閣(자운식자종투각) 문자에 해박한 양자운 끝내 누각에서 투신했거늘,

先生早賦歸去來(선생조부귀거래) 선생은 일찌감치 귀거래사를 지었으나

石田茅屋荒蒼苔(석전모옥황창태) 돌밭과 초가 황폐하여 푸른 이끼 뒤덮였다네.

儒術於我何有哉(유술어아하유재) 유술이 나에게 무슨 쓸모 있으리!

孔丘盜跖俱塵埃(공구도척구진애) 공자와 도척 다 함께 흙먼지 되고 마는 걸.

不須聞此意慘愴(불수문차의참창) 이런 말 듣더라도 마음에 비참할 건 없으니

生前相遇且銜杯(생전상우차함배) 살아 생전 서로 만나 또 술이나 들이킵시다.


* 곤곤(袞袞) : 줄줄이 이어지며 많은 모양. * 대성(臺省) : 어사대(御史臺) 및 중서성(中書省), 상서성(尙書省), 문하성(門下省)의 삼삼(三省)을 가리킴.

* 광문선생(廣文先生) : 광문관 박사인 정건을 가리킴.

* 희황(羲皇) : 복희씨(伏羲氏). 전설 속의 제왕. 수인씨(燧人氏), 신농씨(神農氏)와 함께 삼황(三皇)이라 불림.

* 굴송(屈宋) : 굴원(屈原)과 송옥(宋玉). 전국시대 사부(辭賦)로 유명한 작가이다.

* 두릉야객(杜陵野客) : 두보의 자칭. 그 외에도 두릉야노(野老), 두릉포의(布衣)로 자처하였다 두릉 땅은 한선제의 능묘가 있는 지역으로, 두보 선조의 관적이 두릉이기도 하다. 또한 두보는 한선제의 허황후(許皇后) 능묘인 소릉(少陵) 부근에 살았으므로 ‘소릉야노’라고도 자칭하였다.

* 갈(褐) : 거친 삼베옷. 평민이 착용한다.

* 태창(太倉) : 경성의 곡식을 저장하는 큰 창고. 현종 천보 12년(753) 가을 장마로 농사를 망쳐 쌀값이 급등하자 태창에서 쌀 10만 석을 풀어 가난한 이들에게 팔았다.

* 정노(鄭老) : 정건을 가리킴.

* 망형(忘形) : 예의나 형식 따위를 잊다. 나이나 신분, 예절 등의 구애를 받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는 뜻.

* 상여(相如) : 사마상여(司馬相如) : 서한의 저명한 사부(辭賦) 작가. 성도 사람. 아내 탁문군(卓文君)과 임공(臨邛)에서 주점을 차려놓고, 아내는 술 팔고 자신은 설거지를 하며 살기도 했다.

* 자운(子雲) : 양웅(揚雄). 자운은 그의 자(字). 한나라 때의 저명한 문학가. 성도 사람. 박학다식했으며 옛날의 기이한 글자를 잘 알았다. 왕망(王莽)이 정권을 찬탈한 뒤, 양웅은 친구 유흠(劉歆)의 아들이자 제자인 유분(劉棻)에 연좌되어 자신이 체포되어 벌 받을 것으로 지레 겁을 먹고 천록각(天祿閣)에서 뛰어내려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다.

* 귀거래(歸去來) : 귀거래사(歸去來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 팽택현령을 그만두고 은거할 때 지은 글.

* 공구(孔丘) : 공자(孔子)를 가리킴. 구는 그의 이름. 춘추시대 노나라 추읍 출신. 유가 학파의 창시자. * 도척(盜跖) : 대도(大盜) 유하척(柳下跖)을 가리킴. 춘추시대 노나라의 정치가, 사상가, 교육가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 부자를 겁박해 빈민을 구제하다가 무고를 받고 도둑이 되었다.

* 함배(銜杯) : 입에 술잔을 머금다. 술을 마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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