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京赴奉先縣詠懷, 五百字(자경부봉선현영회, 오백자) 장안에서 봉선현으로 가 지은 5백자의 영회시(五言古詩)
현종 천보 14년(755) 겨울에 지었다. 두보는 10월에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參軍)에 임명되었고, 11월에 장안에서 처자식을 만나기 위해 봉선현으로 향하였다. 그의 가족은 가을 이후 봉선현령으로 있는 인척에게 얹혀 살고 있었다. 당시 당현종은 양귀비와 여산에 온천궁에서 행락을 즐기고 있었는데, 바로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의 시점이다. 시는 평소 자신의 정신적 지향과 여로에 견문한 바를 서술하는 한편 국가와 백성의 운명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느낀 작자의 깊은 우려를 담아내었다.
杜陵有布衣(두릉유포의) 두릉 땅에 벼슬 없던 선비가 있어
老大意轉拙(노대의전졸) 늙어갈수록 의지 점차 졸렬했으나,
許身一何愚(허시일하우) 스스로 자부함 어찌 그리 우매했던가?
竊比稷與契(절비직여설) 속으로 직과 설 같은 이에 견주었다니.
居然成濩落(거연성호락) 끝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신세가 되어
白首甘契濶(백수감계활) 흰머리 되도록 힘겨움 감내하여 왔거늘,
蓋棺事則已(개관사즉이) 관 뚜껑 덮이면 세상사 끝이겠지만
此志常覬豁(차지상기활) 처음 그 뜻을 늘 실현하길 바래왔다네.
窮年憂黎元(궁년우려원) 한 해 다하도록 백성들을 염려했으니
歎息腸內熱(탄식장내열) 탄식을 하다 애가 타들어가 뜨거웁건만,
取笑同學翁(취소동학옹) 같이 배운 노인네들에게 비웃음 사니
浩歌彌激烈(호가미격렬) 목청껏 부르는 노래 더욱 격렬해졌네.
非無江海志(비무강해지) 강해에 숨어 살려는 뜻도 없지는 않아
蕭灑送日月(소쇄송일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월 보내려다가,
生逢堯舜君(생봉요순군) 살면서 요순 같은 성군을 만나게 되어
不忍便永訣(불인편영결) 문득 기리 떠나가진 차마 못하였구나.
當今廊廟具(당금랑묘구) 지금 조정엔 재능 있는 신하들 갖춰졌으니
構厦豈云缺(구하기운결) 큰 집 짓는 데 결함 있다 어찌 말을 하랴만,
葵藿傾太陽(규곽경태양) 나의 충심은 해바라기처럼 태양 향해 기우니
物性固難奪(물성고난탈) 사물의 본성은 실로 앗아가기 어려운 법일세.
顧惟螻蟻輩(고성루의배) 돌이켜 보면 땅강아지 개미 같은 무리는
但自求其穴(단자구기혈) 자기 구멍이나 파 부귀영화 구하려할 뿐인데,
胡爲慕大鯨(호위모대경) 나는 어찌하여 큰 고래와 같은 이 사모하여서
輒擬偃溟渤(첩의언명발) 문득 큰 바다 속에 헤엄치며 놀려 했던가?
以茲悟生理(이자오생리) 이 때문에 인생의 도리를 깨우치고부터는
獨恥事干謁(독치사간알) 찾아다니며 청탁하길 홀로 수치스러 했으며,
兀兀遂至今(올올수지금) 꼿꼿한 모습으로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忍爲塵埃沒(인위진애몰) 차마 더러운 먼지에 파묻힐 수 있으리?
終愧巢與由(종괴소여유) 끝내 옛 은자 소부와 허유에게 부끄러우나
未能易其節(미능역기절) 나의 그런 지조야 바꿀 수가 없었으니,
沈飮聊自遣(침음료자견) 술에 빠져 애오라지 스스로 마음을 풀고
放歌破愁絶(방가파수절) 노래 부르며 극심한 우수를 깨뜨려왔네.
歲暮百草零(세모백초령) 세모가 되어 온갖 풀들 시들었으며
疾風高岡裂(질풍고강렬) 거센 바람 높다란 산언덕을 찢어놓는데,
天衢陰崢嶸(천구음쟁영) 하늘에는 음습한 기운이 왕성하지만
客子中夜發(객자중야발) 나 나그네 되어 한 밤중 길을 떠나게 됐네.
霜嚴衣帶斷(상엄의대단) 된서리는 내리고 옷끈마저 끊어졌으나
指直不能結(지직불능결) 손가락 뻣뻣하게 곱아 다시 묶을 수가 없었고,
凌晨過驪山(릉신과려산) 이른 새벽에 온천궁 있는 여산을 지나가노라니
御榻在嵽嵲(어탑재체얼) 높은 산중 궁전에 임금이 와 머물려 계시었다네.
蚩尤塞寒空(치우새한공) 자욱하게 깔린 안개는 차가운 하늘 뒤덮었으며
蹴踏崖谷滑(취답애곡활) 벼랑 골짝을 밟고 나아가자니 미끄럽기만 한데,
瑤池氣鬱律(요지기울률) 서왕모의 요지 같은 온천에는 증기가 피어나고
羽林相摩戛(우림상마알) 근위대인 우림군은 서로 부딪칠 듯 많기도 했네.
君臣留歡娛(군신류환오) 임금과 신하 머물면서 환락을 즐기고 있었으니
樂動殷膠葛(악동은교갈) 풍악소리 울려 드넓은 하늘에 진동하였으며,
賜浴皆長纓(사욕개장영) 온천욕 하사 받은 이는 모두 고관대작들로서
與宴非短褐(여연비단갈) 연회에 참가하는 이 또한 평민백성 아니었네.
彤庭所分帛(동정소분백) 붉은 칠한 궁정에서 나누어 주는 비단은
本自寒女出(본자한녀출) 본래 한미한 집안 여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鞭撻其夫家(편달기부가) 그 지아비의 가족들을 매질해 때려가면서
聚斂貢城闕(취렴공성궐) 거둬들여 도성 궁궐에 바쳐진 것이라네.
聖人筐篚恩(성인광비은) 임금이 대광주리에 비단 담아 하사한 은혜는
實願邦國活(실원방국활) 실로 나라 백성을 잘 살게 하길 원한 것이니,
臣如忽至理(신여홀지리) 신하들이 이러한 지극한 도리를 소홀히 한다면
君豈棄此物(군기기차물) 어찌 임금이 그 하사품을 버린 꼴이 아니랴!
多士盈朝廷(다사영조정) 많은 선비들이 조정에 가득 들어차 있거늘
仁者宜戰慄(인자의전률) 어진 자라면 마음에 의당 놀라 떨어야하리.
況聞內金盤(황문내금반) 하물며 듣자니 궁전 안의 황금 쟁반 따위가
盡在衛霍室(진재위곽실) 위청 곽거병 같은 양국충 집에 죄다 가 있네.
中堂有神仙(중당유신선) 그 집 대청엔 선녀인 양 양귀비 자매 춤을 추니
煙霧蒙玉質(연무몽옥질) 백옥 같은 피부는 안개가 서린 듯 허여멀겋고,
煖客貂鼠裘(난객초서구) 손님들은 담비 모피옷으로 따뜻이 차려입었으며
悲管逐淸瑟(비관축청슬) 애잔한 관악기 소리는 맑은 거문고에 이어졌네.
勸客駝蹄羹(권객타제갱) 손님들에게는 낙타 발굽 익힌 국을 권하고
霜橙壓香橘(상등압향귤) 서리 맞은 등자는 향그런 귤 위에 쌓여 있으니,
朱門酒肉臭(주문주육취) 붉은 대문 안에선 술 고기 냄새가 풍겨난다만
路有凍死骨(로유동사골) 길바닥에는 얼어 죽은 해골들이 널부러져 있네.
榮枯咫尺異(영고지척리) 사치스런 삶과 빈궁한 삶이 지척에서 다르기에
惆悵難再述(추창난재술) 마음 구슬퍼져 다시금 말을 잇기도 어려웁구나.
北轅就涇渭(북원취경위) 수레를 북으로 몰아 경수와 위수 지나서 가고
官渡又改轍(관도우개철) 관 나루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노라니,
羣氷從西下(군빙종서하) 얼음 덩어리들이 서쪽에서 떠내려 오는데
極目高崒兀(극목고줄올) 눈길 끝까지 험한 물결 드높이 넘실거렸네.
疑是崆峒來(의시공동래) 아마도 공동산에서 흘러왔을 터인데
恐觸天柱折(공촉천주절) 하늘 기둥에 부딪쳐 부러뜨릴까 두렵거늘,
河梁幸未拆(하량행미탁) 하천의 다리는 다행히 부셔지지 않았으나
枝撑聲窸窣(지탱성실솔) 지탱하는 기둥에선 삐걱삐걱 소리가 나네.
行李相攀援(행리상반원) 행인들은 서로 붙잡고 당겨주고 한다만
川廣不可越(천광불가월) 하천이 넓으니 뛰어 넘어 건너갈 수 없구나.
老妻寄異縣(노처기이현) 늙은 아내 타향 봉선현에 몸을 붙이고 있어
十口隔風雪(십구격풍설) 열 식구가 눈보라 사이한 채 떨어져 있었으니,
誰能久不顧(수능구불고) 그 누군들 오래도록 돌보지 않을 수 있나?
庶往共饑渴(서왕공기갈) 찾아가 함께 주리고 목말라 하려 하였지.
入門聞號咷(입문문호도) 문을 들어서자 울부짖는 소리 들려왔으니
幼子餓已卒(유자아이졸) 어린 자식놈 굶주리다 벌써 죽고 말았네.
吾寧捨一哀(오여사일애) 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里巷亦嗚咽(리항역오열) 동네 사람들 또한 목메어 흐느꼈다오.
所愧爲人父(소괴위인부) 부끄러워라, 사람의 아비가 되어서는
無食致夭折(무사치요절) 먹일 게 없어 어린 나이에 죽게 하다니.
豈知秋禾登(기지추화등) 어찌 알았으리? 가을날 벼가 익었는데도
貧窶有倉卒(빈구유창졸) 집이 가난해 뜻밖에 이런 일 생겨날 줄을.
生常免租梲(생상면조세) 살아오며 늘 조세를 면제 받았고
名不隸征伐(명불례정벌) 이름은 병적에 속하지 아니 했어도,
撫跡猶酸辛(무적유산신) 살아온 행적 더듬으면 외려 마음 쓰라리거늘
平人固騷屑(평인고소설) 평민들이야 실로 불안에 떨면서 살아왔으리.
黙思失業徒(묵사실업도) 생업을 잃은 이들을 묵묵히 생각하다가
因念遠戍卒(인념원수졸) 멀리 수자리 사는 병졸까지 염려하게 되거늘,
憂端齊終南(우단제종남) 근심의 단서 쌓여 종남산처럼 높아지건만
澒洞不可掇(홍동불가철) 드넓은 물인 양 거두어 들일 수가 없다오.
* 허신(許身) : 자기 자신을 평가하다. 스스로 자부하다.
* 직여설(稷與契) : 稷은 요임금 때의 신하로 농사일을 가르쳤음. 契은 순임금 때의 신하로 백성을 교화시켰음.
* 호락(濩落) : 호락(瓠落)과 같음. 크지만 쓸 데 없다는 뜻.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넓기만 해서 담을 수가 없었다. 텅 빈 채 크기만 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쓸모 없다고 여겨 가 없어 깨부쉈다.”(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 《莊子·逍遙遊》.
* 계활(契濶) : 고생스러움.
* 기활(覬豁) : 도달하기를 희망하다.
* 규곽(葵藿) : 해바라기와 콩잎을 가리키나, 해바라기(葵)만 실질적 의미를 갖고 콩잎(藿)은 그냥 덧붙여 쓴 말이라 무시해도 좋다. 이런 경우를 복사편의(復詞偏義)라 한다.
* 누의(螻蟻) : 누고(螻蛄)와 마의(螞蟻). 땅강아지와 개미. 역량이 보잘 것 없거나 하찮은 사람을 비유함.
* 명발(溟渤) : 끝없이 큰 바다.
* 인(忍) : 기인(豈忍)과 같음. 어찌 차마 ~ 하랴.
* 소여유(巢與由) :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요임금 때 세상을 피해 은거했다는 고사(高士).
* 여산(驪山) : 장안에서 60리 떨어진 산. 화청궁(華淸宮)이란 온천궁이 있어 매년 10월이면 현종이 양귀비와 그 언니를 데리고 겨울을 나며 행락을 벌였다.
* 어탑(御榻) : 임금이 앉는 의자. 그를 빌려 현종을 지칭한 것임.
* 치우(蚩尤) : 잔뜩 안개가 낀 것을 가리킴. 치우는 본래 상고시대의 부족장 이름으로, 전설에 의하면 황제와 싸울 때 크게 안개를 일으켰다고 함.
* 요지(瑤池) : 전설 속 서왕모가 산다는 곤륜산 절정에 있는 못 이름. 여기서는 화청궁의 온천 못을 가리킴.
* 우림(羽林) : 황제의 금위군(禁衛軍).
* 교갈(膠葛) : 아득히 멀고 광대한 모양을 가리킴.
* 장영(長纓) : 길다란 갓끈. 화려하게 의복을 차려 입은 고관대작을 비유함.
* 단갈(短褐) : 짤막한 칡베 옷. 서민을 비유함.
* 동정(彤庭) : 궁정이나 조정을 가리킴. 궁전에 주홍색 칠을 많이 해서 생겨난 말.
* 성인(聖人) : 당나라 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임금을 성인으로 지칭했음. 광비(筐篚) : 대나무로 만든 네모진 광주리와 둥근 광주리. 상고시대에 임금이 대나무 광주리에 비단을 담아 신하들에게 상으로 내려주던 관습이 있었다.
* 위곽(衛霍) :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한무제의 외척으로 몹시 총애를 받았음. 여기서는 양국충 형제와 자매를 지칭한 것임.
* 신선(神仙) : 양귀비 자매 혹은 잘 차려 입고 용모가 예쁜 무녀(舞女)와 가기(歌妓)를 가리킨 것으로도 볼 수 있음.
* 초서구(貂鼠裘) : 담비의 털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갓옷.
* 타제갱(駝蹄羹) : 낙타의 발굽에 붙은 살로 끓여 만든 진귀한 탕. 팔진미 가운데 하나.
* 상등(霜橙) : 서리 내린 이후에 딴 맛 좋은 등자(橙子) 열매를 가리킴. 오렌지의 일종.
* 주문(朱門) : 붉은 칠을 한 대갓집 대문.
* 경위(涇渭) : 탁한 경수와 맑은 위수 두 강물. 농서 지방에서 발원해 장안에서 멀지 않은 섬서성 임동(臨潼)에서 합류한다.
* 관도(官渡) : 관에서 경수와 위수가 만나는 곳에 설치한 나무터를 가리킴.
* 공동(崆峒) : 감숙성 민현(岷縣)에 있는 산.
* 천주(天柱) : 신화 속에서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 여기서는 국가를 암유한 것임.
* 행리(行李) : 행인, 나그네. 여행 혹은 여행 꾸러미를 가리키기도 함. 행리(行理)와 같음.
* 이현(異縣) : 봉선현(奉先縣)을 가리킴. 고향에 대비시켜 말한 것임.
* 정벌(征伐) : 징병되어 종군함을 가리킴.
* 종남(終南) : 장안 부근에 있는 산. 진령(秦嶺) 산맥의 주봉.
* 홍동(澒洞) : 물이 아득하니 끝없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