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왕손(哀王孫) 왕손을 불쌍히 여기며(七言古詩)
현종 천보 15년(756) 6월, 안록산 반군의 공격으로 동관(潼關) 방어에 실패하자 현종은 화급히 장안에서 촉땅으로 도주해 성도(成都)를 향해 갔다. 7월 장안이 함락된 후, 안록산은 황실 종친과 조정의 관리를 학살하였다. 두보는 장안에 억류되어 있다 우연히 탈출하지 못한 왕손을 만나 가련히 여기며 그를 위로 하는 시를 지었다. 대략 9월 즈음이다.
長安城頭頭白烏(장안성두두백오) 장안 성 꼭대기에 머리 허연 까마귀
夜飛延秋門上呼(야비연추문상호) 밤에 연추문 위로 날아가 울어대더니,
又向人家啄大屋(우향인가탁대옥) 또 민가로 향해 가 저택을 쪼아대는데
屋底達官走避胡(옥저달관주피호) 집 안의 고관은 오랑캐 피해 달아났구나.
金鞭折斷九馬死(금편단절구마사) 금 채찍 부러지고 아홉 준마 죽었거늘
骨肉下得同馳驅(골육부득동치구) 골육도 함께 말 달려 피신하지 못했으니,
腰下寶玦靑珊瑚(요하보결청산호) 허리 아래 패옥과 푸른 산호 늘어트린 채
可憐王孫泣路隅(가련왕손읍로우) 가련하게 왕손이 길 모퉁이에 울고 있네.
問之不肯道姓名(문지불긍도성명) 물어도 성명을 말하지 않으려 하고
但道困苦乞爲奴(단도곤고걸위노) 처지 곤란하니 종으로 삼아 달라 하는데,
已經百日竄荊棘(이경백일찬형극) 이미 백일을 가시덤불에 숨어 지내느라
身上無有完肌膚(신상무유완기부) 몸에는 살갗이 온전한 곳 없구나.
高帝子孫盡隆準(고제자손진융준) 고제의 자손은 모두가 콧등이 우뚝하고
龍種自與常人殊(용종자여상인수) 용의 종자는 본디 평범한 사람과 다르건만,
豺狼在邑龍在野(시랑재읍용재야) 승냥이떼 고을을 차지해 용이 들에 있으니
王孫善保千金軀(왕손선보천금구) 왕손은 천금 같은 몸을 잘 보중하시오.
不敢長語臨交衢(불감장어임교구) 교차로에서 오래도록 말하기 곤란하지만
且爲王孫立斯須(차위왕손입사수) 왕손을 위해 잠깐 멈춰 서 있겠소이다.
昨夜東風吹血腥(작야동풍취혈성) 지난 밤 동풍에 피 비린내 불어오면서
東來槖駝滿舊都(동래탁타만구도) 동쪽에서 온 낙타떼 도성 안에 가득하다오.
朔方健兒好身手(삭방건아호신수) 북방의 건아들은 무예가 출중하다 하건만
昔何勇銳今何愚(석하용예금하우) 전엔 그리 용맹터니 이젠 어찌 그리 우둔한가!
竊聞天子已傳位(절문천자이전위) 몰래 듣자니 천자는 이미 황위를 물려줬으며
聖德北服南單于(성덕북복남선우) 성스러운 덕에 북방의 남선우가 따른다 하오.
花門剺面請雪恥(화문리면청설치) 회흘은 칼로 얼굴 베며 치욕 씻길 청했다는데
愼勿出口他人狙(신물출구타인저) 남이 알까 염려되니 부디 입 밖에 내지는 마오.
哀哉王孫愼勿疎(애재왕손신물소) 애달퍼라! 왕손이여 부디 소홀히 하지 마시오
五陵佳氣無時無(오릉가기무시무) 오릉의 상서로운 기운이야 사라질 날 없으니.
* 두백오(頭白烏) : 전설에 의하면 하얀 까마귀의 출현은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 연추문(延秋門) : 장안 금원(禁苑)의 서문. 현종이 이 문을 경유해 촉으로 도주했다.
* 구마(九馬) : 임금의 말을 가리킴. 본래는 한나라 때 원제(元帝)의 아홉 준마.
* 골육(骨肉) : 황실의 자손을 가리켜 말한 것임.
* 보결(寶玦) : 진귀한 옥으로 만든 패물. 원형에 중앙부는 비어 있으며, 한쪽으로 곧게 틈을 내어 잘랐다.
* 고제(高帝) : 한고조 유방을 가리킴. 여기서는 황제를 의미함.
* 용종(龍種) : 황제의 자손을 비유함.
* 시랑(豺狼) : 승냥이와 이리. 안록산 반군을 비유함.
* 교구(交衢) : 길이 서로 교차하는 곳. 요충지.
* 사수(斯須) : 잠시, 잠깐. 수유(須臾)와 같음.
* 작야(昨夜) : 동관이 격파되던 때를 가리킴.
* 구도(舊都) : 반군에 점령된 장안을 가리킴. 현종은 촉땅으로 도주해 성도에 있었으며, 숙종은 영무에서 즉위해 그 곳에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칭한 것임.
* 삭방건아(朔方健兒) : 하서(河西)와 농우(隴右) 군대가 주병력인 가서한(哥舒翰) 의 군대를 가리킴. 당시 가서한이 20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동관을 수비했으나 도림(桃林)에서 완패를 당하고 항복하였다.
* 천자(天子) : 현종을 가리킴.
* 남선우(南單于) : 회흘(回紇) 왕을 가리킴. 선우는 본래 흉노의 왕을 가리키는 말. 후한 광무제 때 남북으로 분열되어 남선우는 한나라에 복종하였음.
* 화문(花門) : 화문산보(花門山堡). 지명으로, 내몽고자치구에 있는 호수인 거연해(居延海) 동북에 있음. 회흘 기병이 주둔하던 곳으로, 회흘을 가리킴.
* 오릉(五陵) : 장안성 밖에 있는 한나라 다섯 황제(고제, 혜제, 경제, 무제, 소제)의 능묘. 그를 빌려 장안과 당나라 황실을 말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