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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 Aug 07. 2021

자존심이 밥 먹여주더라

    중국에 살다 보면 꽤 높은 확률로 고수를 기피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고수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기로 유명한 향신료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고수보다 더 큰 복병은 취두부였다. 취두부는 호불호의 싸움 리스트에 거론되지도 않는다. 대부분 '불호'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와서 고수는 좋아져도 취두부만큼은 극복하기 어렵다는 게 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중국 음식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한다고 자부하곤 하는 나 조차도 취두부는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던 유일한 음식이었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기로 악명 높은 취두부는 두부를 소금에 절여 삭힌 뒤에 기름에 튀긴 중국의 전통 음식이다. 맛있는 두부를 가지고 대체 왜 삭힐 생각을 했는지 또 그 삭힌 두부를 굳이 왜 튀겼는지 취두부를 만들어 낸 사람의 의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중국이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된 거라고 같이 흐린 눈 해보자. 어쨌든 취두부를 즐겨먹는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면 냄새만 역할 뿐이지 맛은 두부랑 똑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맛도 좋지만 냄새까지 좋은 그냥 두부를 먹지 굳이 왜 취두부를 먹는 걸까? 이토록 취두부는 내게 늘 궁금했던 난제였다.

    

    내 푸다오인 하이닝이 보기에는 한국인인 내가 이런저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으니 참 신기했나 보다. 어느 날 내게 정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뚜시는 정말 모든 음식을 잘 먹네! 하지만 아무리 뚜시라도 취두부는 안될 거야, 그렇지?”


    하이닝은 나를 도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게 분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하이닝에게 "취두부? 말이 심하네..."라고 했어야 그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될 하이닝을 보고 싶지 않았다(물론 철저히 내 기우이다). 게다가 내가 먹지 못하는 중국 음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건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내 마음에 큰 스크래치가 날 것이 분명했다. 하이닝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라면 분명 취두부까지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나라도 내 외국인 친구가 이것저것 한국 음식을 다 잘 먹는다면 ‘혹시 산 낙지도 같이 먹어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거란 말이지.


    취두부를 먹기로 한 당일, 하이닝은 내내 설레는 마음을 얼굴 가득 내비쳤다. 친구들과 늘 가는 취두부 집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계속 걸어갔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나는 '그냥 숨 참고 빨리 삼키면 될 거야'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약간 관종인 나는 취두부가 두려운 마음보다 취두부를 먹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마음이 더 컸기에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취두부 냄새가 골목에 짙게 배인 게 느껴졌다. 그 냄새가 점점 나를 화려하게 감싸 올 때 난 이게 숨을 참는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냄새가 너무 강력해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하이닝은 그 뒤로도 한참을 걸었다. 보기도 전에 냄새에 먼저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 이렇게 골목 전체가 취두부 냄새인데 다 온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진짜 취두부 앞은 냄새가 얼마나 강력할까... 망했다'


    지금이라도 못 먹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하이닝은 어떤 가게에 들어가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취두부를 시켜버렸다. 5초 안에 일어난 일이어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곧이어 플라스틱 그릇에 대충 담겨 나온 취두부를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어벤저스에서 봤던 외계에 존재하는 빛 뿜는 스톤처럼 생겼던 것 같다. 하이닝은 내가 먹기를 기다리며 동영상을 찍어도 될지 물어봤다. 이 동영상은 하이닝 친구들에게 보내질 것이고 따라서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줘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머리로는 분명 죽을 만큼 먹기 싫었는데 뇌와 침샘이 합의가 안된 건지 이것도 음식이라고 인식하자 나는 어느새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음식이니까 그냥 입에 넣고 삼키는 거야!’ 


    숨을 깊게 들이쉬어 몸속에 가득 비축해 두고 헙, 숨을 참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취두부를 한 입 꿀꺽했다.


    '어? 생각보다는 별거 아니잖아?'


    내 입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취두부는 정확히 흐물거리는 푸딩을 일주일 동안 안 씻은 맨발로 열심히 치대서 따뜻하고 말캉거리게 만든듯한 식감이었다. 안타깝지만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 몸이 자기 방어의 일종으로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막았던 것 같다. 먹은 뒤 기억도 희미하다. 분명 꽤 먹을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무슨 정신으로 기숙사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기숙사에 와서 정말 정신없이 속을 게워냈다. 비틀비틀 간신히 침대에 누웠는데 내 머리카락에 배인 취두부 냄새 때문에 내 주변을 거대한 녹색 취두부 구름이 두둥실 감싸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양치를 해도 취두부의 잔향이 사라지지 않아서 물도 마실 수 없었다. 꾹 참다가 갈증에 못 이기고 물을 마시면 취두부의 향이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이 경험으로 나는 시각보다 후각의 기억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얼마 뒤, 나와 함께 이젠 취두부까지 완벽하게 정복했다고 생각한 하이닝은 그 후에 ‘원숭이 머리 전골’을 먹으러 가자했지만 그녀를 오래 보고 싶던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후로 다시는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를 실험하지 않는다. 또한 취두부는 내 인생에서 다신 먹고 싶지 않은 음식 1위에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김도희


Ps. 세상에는 굳이 안 해도 될 경험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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