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속의 질서
일반인들의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어떤 일이라도 그 앞에 ‘중국’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놀랍게도 모든 게 그럴 수도 있다며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래 중국이니깐 뭐' 이러면서.
북경에서 일상을 보낼수록 한국과 묘하게 닮은 듯 다른 중국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더 낯설었던 문화는 바로 ‘무단횡단’이다. 한국에서는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쉽게 보기는 어렵고 그만큼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지만 중국에서는 무단횡단이 흔한 일상이다. 중국에서 무단횡단 문화(?)를 처음 겪은 건 혼자서 외출을 하게 된 날이었다.
북경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며 자신감이 조금씩 붙은 김에 기숙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를 혼자 가보기로 했다. 바이두 지도(중국의 지도 앱)로 가는 길을 꼼꼼하고 완벽하게 숙지한 뒤 야심차게 출발했다. 긴장 가득한 마음으로 중국어 책이 들어있는 배낭을 꽉 잡고 음악도 듣지 않은 채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까지 남은 건 횡단보도 하나였다. 여기까지 찾아온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서 광대가 저 하늘까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중국어로 된 지도를 읽어가며 혼자 힘으로 찾아오다니! 물론 지도를 보는 데는 중국어 해석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껏 올라간 광대를 꽉 붙잡으며 초록불을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신호는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나는 신나게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나와 종이 한 장의 간격도 안 날 만큼 가깝게 차가 쌩하고 지나갔다.
“미친 거 아냐? 나 정말 죽을 뻔했잖아!”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차가 멈추는 게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었다. 하지만 중국 운전자들은 사람이 앞에서 길을 건너려는 것을 봐도 액셀을 밟는 데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분명 보행신호인데 멈추는 차는 단 1대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단 1대도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30분 동안 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고 또 바뀌고 아무리 기다려도 차들은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어느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서는 빨간불에 길을 건너려는 것이다. 나는 혼비백산하며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너 오늘 집에 갈 거지? 그럼 나를 따라와야 해”
그렇게 말하며 날 끌고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빨간불임에도 아주머니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차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중국은 ‘무질서’ 해도 그 안에 중국인들만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천천히 무단횡단을 하면 그 속도에 맞춰 차들이 속도를 줄이거나 비켜가거나 멈춘다. 하지만 절대 달리면서 무단횡단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한 차에 치여 100세 시대에 나 혼자 억울하게 단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 '무질서 속의 질서'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보행신호에 길을 건너려 할 때 빵빵거리는 차들을 보며 ‘보행신호에 길을 건너려는 내가 정말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이놈의 무단횡단 문화는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해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긴 한지 나는 어느새 달려오는 차들과 속도를 맞춰가며 제법 빠르게 길을 건너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초록불에 어설프게 천천히 길을 건너려는 게 오히려 사고 위험이 높게 느껴졌다. 나중엔 오히려 무단횡단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보행신호에 일제히 멈추는 차를 보면서 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대한민국이 최고야!'
김도희
Ps. 그 후 다시 중국에 갔을 때 보니 아직 저의 무단횡단 실력이 죽지 않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