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또 May 19. 2021

누가 내 마라에 마약 탔니?

    지금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마라 열풍’이다. 그만큼 마라를 사용한 메뉴는 어느 음식점에서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넓적 당면, 푸주, 그리고 분모자 같은 중국 식재료까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내가 마라를 처음 접한 때는 중국 내 젊은 층 사이에서나 마라가 막 인기를 끌면서 유행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였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는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나 몇 군데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향신료였다.


    ‘마라(麻辣)’, 이 단어를 해석해보면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이라는 뜻이다. 매운맛 중에서도 중국 쓰촨 지방의 매운맛을 지칭한다. 이 매운맛은 한국의 매운맛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은 묵직하고 시원한 매운맛이라면 마라의 매운맛은 누가 혀를 툭툭치고 도망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 안과 주변이 저리듯이 밀려오는 매운맛이다. 이렇게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내 표현력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주변에 마라샹궈나 마라탕이 어떤 맛이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나처럼 맛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먹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맛이다.


    마라를 사용한 요리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라로 탕을 만들면 마라탕, 볶으면 마라샹궈, 샤부샤부로 먹으면 훠궈이다. 우선 마라탕은 내가 고른 재료들을 담은 뒤 무게를 재고 맵기 정도를 알려주면 한 번에 끓여서 땅콩과 깨로 만든 ‘마장’이라는 소스가 얹어져 나온다. 내가 꼭 넣는 재료는 감자, 건두부, 넓적 당면, 청경채, 팽이버섯, 목이버섯, 다시마, 베이컨이다. 마라탕 위에 자신의 취향대로 다진 마늘이나 참기름 같은 부재료를 넣어 먹으면 더욱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마라탕 국물을 잘 먹지 않는다. 마라 중독 초기에 같이 마라탕을 먹곤 했던 중국인 친구가 마라탕 국물은 기름기가 엄청 많아서 자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내게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다른 중국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니 마라탕 국물이 건강에 몹시 안 좋다는 생각이 다수였다. 오히려 대체 왜 마라탕의 국물을 먹을 생각을 하냐고 내게 물었다. 아마 중국에는 우리나라처럼 국물까지 다 마시는 문화가 없던 것도 그들의 생각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매일같이 마라탕을 먹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국물을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국물의 민족인 한국인들은 대부분 나를 특이하다고 했다. 나도 몇 번이나 국물까지 싹싹 다 마셔보려고 했지만 아직도 철저하게 건더기파로 살고 있다.


    다음으로 마라샹궈는 여러 재료들에 마라 소스를 넣고 불에 빠르게 볶는 요리다. 맛있는 마라샹궈 집을 찾는 나만의 팁은 기름에 튀기듯이 센 불에 볶는 소리가 주방 밖까지 들리는 곳! 마라탕과 마라샹궈는 정신없이 재료를 담다 보면 양 조절에 늘 실패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마라샹궈는 밥이랑 먹기 때문에 재료들을 생각보다 적게 담아야 한다. 중국에서는 백화점 진열대처럼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재료들을 아무리 많이 담아도 위완화로 30원이 나온다. 한화로 약 6,000원! 밀크티(奶茶)나 볶은 매실로 만든 차인 산매탕(酸梅汤)과 같이 먹으면 마라의 매운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내가 꼭 추천하는 조합이다. 


    마라샹궈를 처음 알게 된 건 룸메이트 언니 덕분이었다. 그 언니는 마라샹궈를 삼시 세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는 사람이었다. 질리지도 않는지 매일같이 꼭 방으로 포장해와서 먹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마라샹궈 냄새는 미안하지만 정말 구역질이 나는 냄새였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나였는데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는 마라만큼은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룸메이트 언니는 밖에 나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항상 마라샹궈를 방 안에서 먹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언니가 마라샹궈를 포장해오는 횟수에 비례하게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저 ‘마라샹궈’는 어떤 맛이기에 룸메이트 언니는 내가 이렇게까지 역겨워하는데 꾸준히 먹는 걸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무작정 학식당 중 하나인 마라샹궈 전문점을 갔다. 여러 재료를 선택하고 맵기를 선택한 뒤 기다렸다. 사장님에게 목욕탕에서 주는 것과 같은 번호 칩을 건네받고 앉아서 기다리니 이윽고 사장님이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 내 번호를 부르는 거구나’ 대충 눈치로 알아듣고 다가갔다. 가져갈 거냐고 몸짓으로 설명하는 사장님 앞에서 나는 단호한 표정(한 달 동안의 서러움을 표정으로 표현했다)을 곁들여 손으로 엑스표를 만들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라샹궈를 받아 자리에 가져와 앉았다. 내가 고른 재료들 중 제일 만만해 보이는 팽이버섯을 한가닥 들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 용기를 내어서 살짝 씹었다.


    “...? 우웩, 이게 대체 무슨 맛이야?????”


    내가 방금 뭘 먹은 건지 정신도 차리기 전에 팽이버섯에 붙어있던 까맣고 동그란 알갱이를 씹자 혀는 점점 감각이 없어졌다. 분명 맵긴 매운데 한국의 얼큰하고 칼칼한 매운맛이랑은 묘하게 다른 그 맛. 사장님이 요리해 준 성의를 생각해서 한 입 더 먹었지만, 이건 도저히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게만 실릴 뿐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누른 채 결국 다 버리고 말았다. 가난한 어학연수생인 내 신분이 떠오르면서 괜한 객기에 아까운 돈을 희생시켰다는 속상함만 안고 방으로 돌아와 잠에 들었다. 그 날 새벽, 별안간 잠에서 확 깨어 눈이 팍 떠지는 게 아닌가. 그런 뒤에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마라샹궈를 당장이라도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찌릿찌릿 감싼 것이다! 아까 먹다 남긴 마라샹궈가 생각나면서 입 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마라샹궈가 먹고 싶어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학식당이 열자마자 바로 어제 그 식당에서 마라샹궈를 주문한 뒤 다시 먹었다. 마라샹궈를 먹자마자 만족감에 푹 젖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버린 어제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날 내 인생은 마라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그때부터 나의 지독한 마라 중독 증세가 시작되었다. 나도 어느덧 룸메이트 언니처럼 하루에 한 끼는 꼭 마라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기쁜 일에도 슬픈일에도 떠오르는 건 결국 마라였다.


    그 후 나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마라샹궈를 먹고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다 마라의 길로 전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몸을 쿡 찌르면 피 대신 마라가 흐를 게 분명한  ‘마라 중독자’가 돼버린 것이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때 내가 처음 먹은 마라샹궈에 혹시 마약을 탄 게 아닐까? 먹어도 먹어도 생각나는 마라 때문에 진지하게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중국은 여러 의미로 불가능한 것이 없는 나라니까!

      


김도희


Ps. 마라보다는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한 빵또아 같은 사람입니다.

이전 04화 북경 속 오아시스, 왕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