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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 Sep 14. 2021

양꼬치에 얽힌 설화

    나는 중국에 오기 전까진 양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소, 돼지, 닭으로도 먹을 고기는 넘치는데 굳이 양까지 먹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양꼬치는 그다지 당기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오는데 어디선가 꼬릿한 냄새가 났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니 매캐한 연기 사이에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꼬치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닭꼬치인 줄 알고 달려갔다. 꼬치를 굽는 아저씨의 폐 건강이 매우 걱정될 만큼 독한 연기구름을 헤치고 들어가 물었다.


    "사장님! 이건 뭐예요?"

    "양꼬치야, 하나 줄까?"


    내 생에 처음 먹는 양꼬치를 이런 식으로 가볍게 먹을 수는 없지! 사장님께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하경 언니, 대구걸즈에게 전화해서 이 가게로 바로 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양꼬치와 맛있어 보이는 사진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러 요리를 주문했다. 핑계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중국에서 급격하게 살이 찐 이유 중 하나는 음식을 종류별로 많이 시켜서 나눠먹고 또 조금은 남기는 게 예의인 이곳의 문화 때문도 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준비했을 때 손님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싹싹 다 먹으면 무척 뿌듯해하지만 중국에서는 너무 적게 준비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해한다. 한번 관련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늘 넉넉하게 음식을 시키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 음식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는 내 거대한 위장 면적에 있지만. 어쨌든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 양꼬치가 먼저 나왔다.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 점원은 담배를 뻑뻑 피며 구워지고 있을 때보다 냄새가 더 꼬릿한 양꼬치를 휙 주고 갔다. 산처럼 쌓인 양꼬치 위에는 도정하기 전 보리 같은 동그란 알갱이들이 한가득 뿌려져 있었다. 찾아보니 쯔란(큐민)이라는 이름도 낯선 향신료였다. 한 알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어보니 무척 진한 향이 나며 약간은 쓴 맛이 났다.


'이걸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뿌려준 걸까?'


     나름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최대한 그 알갱이들을 피하고 싶던 나는 쯔란이 덜 묻은 양꼬치를 골라 먹었다. 꽤 많은 기름기 때문에 고기가 더 바삭하게 구워져서 맛있었다. 한 입 사이즈로 잘라낸 크기도 바삭한 식감의 플러스 요인이었다. 양꼬치를 처음 먹고 용기가 생긴 나는 쯔란을 많이 묻힌 양꼬치를 먹었다.


"세상에, 미미!!!!(美味)"


    나는 양꼬치를 씹고 있는 입을 포함한 모든 구멍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꼬릿한 냄새까지 품을 수 있을 만큼 진짜 너무 맛있었다. 그냥 한 알만 집어서 먹을 때는 왜 먹는지 잘 모르겠던 쯔란의 진가를 양고기와 함께 먹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지만 무지무지 차가운 맥주 한 컵이 절실하게 당겼다. 중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차가운 것은 무조건 건강에 안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좋지 않은 수질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래서 차가운 무언가를 마시고 싶다면 돈을 더 줘야만 했다. 건강에 안 좋은 건 더 싸야 맞는 게 아닌가? 평소라면 그냥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겠지만 이날만큼은 따뜻해서 맛이 맹숭맹숭한 맥주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 차가운 설화 맥주 하나 주세요!"


    다들 중국 맥주 하면 칭다오 혹은 하얼빈 맥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의 맥주 중에 최고는 '설화 맥주'라고 생각한다. 맥주로 낼 수 있는 깔끔한 그 맛은 설화 맥주가 최고로 잘 구현한 것 같다. 차가워서 김까지 펄펄 나는 맥주를 받아 들고 서둘러 컵에 콸콸 따라서 꿀떡꿀떡 마셨더니 속이 싸악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어른의 맛인가? 맥주를 마시니 느끼함이 리셋되어 우리는 끝도 없이 양꼬치를 먹을 수 있었다. 점원은 그 꼬치들을 말없이 수거해가서 꼬치 굽는 사장님에게 건넸다. 사장님은 그 꼬치를 씻지도 않고 그 위에 다시 고기를 꽂아 구웠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저 비위생이 이 집 맛의 비결인가' 진지하게 토론도 했다.


   나중에는 그 집에서 창문 밖으로 우리가 먹고 뼈대만 남은 꼬치에 새로운 고기를 끼우는 모습을 넋 놓고 감상하며 양꼬치에 설화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게 우리들의 하루 끝 광기 어린 습관이 되었다. 정말 그 비위생이 비법이었는지 아직도 한국에서 그 집만큼 맛있는 양꼬치를 찾지 못했다.




김도희


Ps.  저세상 비위생 양꼬치를 매일같이 먹어서 그런지   어떤 음식을 먹어도 쉽게 장염에 걸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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