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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 Oct 06. 2022

꽌시는 물보다 진하다

    학연, 지연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꽌시(关系)는 중국에서 고속도로다.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해결해줄 수 있는 꽌시가 중국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 문화인지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부터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직접 체감한 것은 중국에 간지 세 달쯤 되서였다.


    그날은 유달리 덥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서 내가 그토록 미루던 택배를 보내는 날이었다. 미룬 이유를 나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기껏 멀리 가봤자 양꼬치집이나 가던 내게 중국의 우체국에서 국제택배를 보내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내내 좁은 방 한구석에 인테리어처럼 박혀있던 택배 상자는 볼 때마다 내 눈에 밟히면서 마음을 참 불편하게도 했다. 그 택배는 당시 사귀던 애인에게 갈 택배였다. 대륙의 맛을 상자에 한가득 담아 보내준다고 호언장담한 지 어느덧 두어 달이 지나버려서 그 가여운 군화 친구는 택배 분실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내가 아직 보내지 않았던 것도 모르고...


    우체국은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마라를 뿌시러 매번 가는 학생 식당보다도 가까운 거리였다. 이 결전의 날을 위해서 나는 학창 시절에도 해본 적이 없던 무려 '예습'이라는 것을 했다.  


    "그래! 연습한 대로만 하는 거야 연습한 대로만..."


    미리 찾아본 택배 양식에 맞춰 그의 주소 그리고 나의 주소만 적고 계산을 하면 끝. 준비는 끝났다. 이 선물꾸러미는 휴가 중인 그의 집으로 곧장 날아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대륙을 조금이라도 맛 보여주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낑낑대며 택배 상자를 끌면서 호기롭게 들어간 우체국은 예상과는 다르게 여유롭고 한가했다. 한참 기다릴 각오를 하고 왔는데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 하지만 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우체국 직원은 내 쪽은 관심도 없고 손톱이나 뜯고 있었다. 그렇다 이 우체국은 여유로웠던 게 아니라 일처리가 느린 거였다. 대기 중인 손님이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어도 직원들은 휴대전화도 보고 서로 떠들기도 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극강의 효율러들로 채워진 대한민국에 대한 향수병이 중증으로 치달을 무렵,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자신 있게 어제 연습한 말을 내뱉었다.


    “저는 한국에 택배를 보내고 싶어요. 택배 안에는 과자가 있습니다. ”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외국인인 내 발음이 현지인인 그들이 듣기에는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나는 조롱의 의도가 짙게 배인 웃음에 온몸이 튀겨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연습한 상황에는 없던 건데...'


    그러더니 나를 가뿐하게 무시하고 내 다음 순서의 사람을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는 내게 직원은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기도 않으면서 내게 말했다.


    “너의 말을 못 알아듣겠으니 옆에서 기다려”


    누가 힘껏 밟아서 완전히 찌그러진 콜라캔이 된 느낌이었다.  딱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갯벌에 빠져버린 나는 당장이라도 기숙사로 돌아가 이 과자를 다 와구와구 한 번에 먹어치워버리고 싶었다. 대체 이깟 과자가 뭐라고!

    하지만 이건 그냥 택배가 아니었다. 중국의 '고무신'이 한국의 '군화'에게 줄 수 있는 건 이 과자밖에 없었단 말이다! 어떻게든 한국에 있는 그에게 중국의 신기한 과자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택배를 접수하려던 그때 우체국으로 익숙한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학교에서 꽤 많이 마주치고 말도 몇 번 했던 중국인 친구였다. 그 중국인 친구는 내게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는 그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를 응대했던 우체국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해서 간 다음에 제일 먼저 본인의 택배를 부쳤다. 그 우체국 직원이 친구에게 예전에 빚진 거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이 하이패스가 설명이 되질 않았다. 허둥지둥 그녀에게 달려가서 제발 이 택배를 보내는 것을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그 중국인 친구는 흔쾌히 나를 비웃었던 직원에게 말했다.


    “이 친구는 내 학교 친구인데 한국으로 택배를 보내고 싶데. 이것도 바로 해줄 수 있지?”


    그러자 그 우체국 직원은 정말 빠르고 친절하게 그 택배를 처리해주는 게 아닌가. 나는 허무하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빨리해준다고?'


    ‘꽌시’를 좋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했었는데 타국에서 본 꽌시는 본인 바운더리 안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든든함이었다. 이곳에서 이방인인 나에게는 유달리 한국인의 '정' 문화가 그리워진 날이었다.




김도희


Ps. 무려 일 년 만의 브런치 글 발행 실화입니까?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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