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수는 반드시 땅덩이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 말인즉슨 대륙 안에 참으로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직업을 난 중국 음식에 질려 찾아간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나볼 수 있었다. 익숙한 로고를 보고 들어가 안 먹어봐도 알 것 같은 맛의 생김새를 하고 있는 햄버거를 사서 신나게 먹고 있는데 어디서 자꾸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매장 직원이 우두커니 서서 내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내가 더럽게 먹어서 그런가? 아님 내 얼굴에 소스가 묻었나? 설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누군가 나를 말없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본능적으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속으로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추론하며 햄버거 세트 하나를 작살내고 이제 슬슬 일어나고 있는데 날 보고 있던 그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쟁반을 가져가는 것이다. 혼비백산한 나는 소리쳤다.
“뭐 하시는 거예요? ”
나는 정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방 예의지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먹은 것은 스스로 치우자’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눈 뜨고 코베이는 게 아니라 이건 완전 눈 뜨고 쟁반 스틸당하기? 놀란 마음을 붙잡으면서 쟁반을 잡은 손에 좀 더 세게 힘을 주어서 내 쪽으로 당겼다. 그 직원과 나는 이 쟁반의 끝을 잡고 뜻하지 않게 힘겨루기를 했다. 그 직원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짧은 중국어를 총동원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내 거야.”
물론 그 쟁반이 내 거라는 소리는 아니다. 쓰레기까지 집으로 가져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 거라고! 그러자 그 직원도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 하지만 이젠 이건 내 거야, 이걸 치우는 게 내 업무거든 ”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은 모두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따로 치우지 않고 그대로 올려둔 채 나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 직원처럼 손님이 먹은 후에 정리만 전담으로 하는 직업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던 것뿐인데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일을 가로챈 거지. 큰 깨달음을 얻고 그때 난 결심했다.
'중국에서는 한국에 없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다시는 오늘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어!'
하지만 난 인간이고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몇 주 뒤, 친구들과 서서 술을 마시는 칵테일 바를 간 적이 있다.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신나는 노래에 조금씩 몸을 흔들어가며 술에 취하고 나 자신에게 취해 기분 좋게 놀고 있는데 누가 자꾸 사람들 사이를 밀면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저 사람 때문에 지금 흥이 다 깨지고 있잖아...’
라는 생각을 하고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의 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였다. 한창 영업 중인 술집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엔 한국에서는 있는지 몰랐던 직업들에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어느덧 익숙해져서 편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맥도날드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쟁반을 치우지 않고 나가려고 했다가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네가 공주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몰래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쟁반 치워주는 직업만큼은 내한해주면 좋겠다 제발!!!!!!!!!'
김도희
Ps. 이 글을 쓰면서 찾아봤는데 중국에는 사투리 통역사와 자전거 지킴이라는 직업도 있다고 해요 신기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