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대세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중국에서 직접 경험한 한류는 그 기세가 남달랐다. 한국 제품이라면 일단 믿고 산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는데 특히 가성비가 좋아 막 쓰는 용도로 사용했던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에서는 백화점 1층에서 살 수 있는 고급 화장품이었을 때 남몰래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런 한국의 화장품을 사용한 일명 ‘한국 아이돌 메이크업’도 덩달아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었지만 나는 원래 그런 화장을 즐겨했던 터라 그날도 역시 그렇게 화장을 하고 왕푸징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얼굴 밑으로 핸드폰을 든 손이 쑥 들어왔다. 그리곤 순식간에 내 얼굴을 찍었다. 기가 찬 내가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그 사진 당장 지워!!!”
“괜찮아, 너 화장이 예뻐서 찍은 것뿐이야”
대체 뭐가 괜찮단 건지... 그 중국인은 최소한의 저작권 의식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나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네가 지금 한 화장에 쓴 화장품들을 싹 다 내게 알려줘”
중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한국 브랜드라 어차피 알려줘도 살 수 없을게 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거 한국 브랜드라 네가 알아도 소용없어”
라고 말하자 그 중국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뭔 상관이야? 중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한국 물건은 없어”
그 중국인은 정말 막무가내로 나를 졸랐다. 결국 나는 내가 바른 매니큐어 이름부터 립스틱 이름까지 모두 알려주고 나서야 그 중국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의 화장품뿐만이 아니라 예능과 드라마의 인기도 정말 높았는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런닝맨’의 출연진들과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드라마 속 주연배우들은 중국의 광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루는 혼자 북경의 조이시티 쇼핑몰로 가방을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매장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가방을 골라달라고 위챗으로 가방 사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를 도와주던 점원이 당시 내 휴대폰 배경화면이었던 ‘배우 송중기'의 사진을 보았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혹시 이 사진 속 남자, 송종지(송중기의 중국발음)야?”
그 사진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사사진이어서 중국에는 아직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 점원이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가게 안에서 크게 소리쳤다.
“언니들! 이 여자는 한국인인데 송중기의 새로운 사진을 갖고 있어요”
말이 끝나는 순간 매장에 있던 모든 여자들이 내게 달려와 사진을 달라며 내 위챗 QR을 스캔하려 했다. 중국에 사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난데 처음 보는 한국인에게 사진을 받으러 몰려오던 그들의 모습은 또 다른 새로움이었다. 한 명씩 사진을 다 주고난 뒤 그 점원은 내게 가방값을 깎아줄 테니까 갖고 싶은 가방을 골라보라고 했다.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한게 아닐까 걱정됐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깎아줘도 되나요? 사장님에게 혼나는 거 아닌가요?”
눈에 걱정이 가득했던 나에게 웃으면서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문제없어(没关系)”
그날의 기억은 내가 한국에서 그 가방을 멜 때마다 생각나는 소중한 추억이다.
김도희
Ps.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끊어진 내 가방, 역시 한국 물건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