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하러 갔다 오면 팥밥 먹고 싶어."
"알았어."
남편이 마침 쉬는 날이라 출근하면서 늘 먹고 싶었던 팥밥을 주문했다. 찹쌀과 함께 팥을 듬뿍 넣고 소금 간을 한 팥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내가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 포기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어릴 적 먹던 것과 똑같은 맛을 내어 만들어 주었다.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집에서 해준 팥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해자 않았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으셔서 늘 가난했다. 국민학교 1 학년 때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나, 동생이 남의 집 차고 안에 있는 조그만 방 한 칸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키가 크신 건장한 분이셨는데 직업이 없었고 술을 좋아하셨다. 엄마는 뜨개질을 해서 푼돈을 마련했고 부자였던 외가에서 쌀이며, 반찬들을 종종 보내주셨다.
어느 날, 엄마가 오랜만에 팥밥을 한 솥 지으셨다. 아버지는 술 드시러 가셨는지 집에 없었고 나와 동생, 그리고 엄마가 조그만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는 밥상 밑에 놓여 있는 솥에 팥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엄마 모르게 상 밑에 손을 넣어 밥솥을 내 쪽으로 조금씩 끌어당겼다. 눈치를 채셨는지 엄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셨고 놀란 나는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여덟 살 나는 알았던 것 같다. 이 맛있는 팥밥을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걸 말이다.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맛있는 팥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화가 잔뜩 난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텐데. 엄마가 무서워서 입도 뻥긋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도 속상했을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밥솥을 끌어당기는 딸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겠지. 그렇잖아도 쌀 떨어질 걱정을 하며 사는 날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날의 팥밥 사건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일들 중 하나이다.
결혼을 하고 친정에 나들이를 할 때면 친정 엄마는 늘 팥밥에 잡채를 해 주셨다. 잡채는 시어머니도 워낙 맛나게 해 주셨지만 팥밥은 친정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언제쯤 간다고 미리 연락을 하면 친정 엄마는 팥밥을 한 솥 지어 놓고 기다리셨다. 다른 반찬 없어도 늘 두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고 조금 있다가 또 밥솥을 긁기 일쑤였다.
십오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팥밥은 한동안 잊고 살았다. 워낙 사는 것이 팍팍하기도 했고, 미국하고 팥밥은 연결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가끔, 그 옛날 한국에서 친정에서 먹던 생각이 나면 그저 그리워하며 지나갔다. 일하기 바쁘고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지라 내가 스스로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중얼거렸다.
"먹고 싶다. 엄마가 해 주시던 팥밥 먹고 싶다."
어느 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팥밥을 지어 놓았다. 큰 기대 없이 먹었는데 맛이 똑같았다. 어, 이 맛을 어떻게 냈어?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너무 좋아서 팥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마치 친정에나 온 것처럼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엄마의 맛, 고향의 맛,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그걸 남편이 해 주었다.
오늘 남편이 지어 준 팥밥을 먹으면서 이제 남편이 내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결혼 35년 만에 한국에 계신 엄마를 대신해 나에게 팥밥을 만들어 주는 엄마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고마워, 너무 맛있어. 최고야."
호들갑을 떠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출근하면서 한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찹쌀을 씻고 팥을 삶고, 소금을 뿌리고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고마움으로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