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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의 소용돌이

by 얄미운 하마

한 연못에 여러 개의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중앙에 있던 커다랗고 아름다운 소용돌이는 뽐내듯이 연못 한가운데를 돌고 있었습니다. 더 크게, 더 아름답게 퍼져 나갔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아직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못한 새끼 소용돌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너처럼 커다란 소용돌이가 되고 싶어. 아니, 이딴 작고 만들어지다 만 소용돌이가 아니라 그냥 니 옆에라도 붙어있고 싶어, 나 좀 받아 주면 안 될까."


아무리 커다란 소용돌이 옆에서 밤을 새워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소용돌이도 만들지 못하고 큰 소용돌이안으로 들어가 뽐내지도 못하고 그만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져 버린 작은 소용돌이가 마치 나의 인생 같아서 동화처럼 만들어 보았다. 그저 그런 이야기 같지만 내게는 커다란 인생교훈이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특별히 살아오면서 맺었던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몇 년 전 K샘과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만나서 끝내진 않았고 카톡으로 주고받다가 오랜 시간 생각하고 있던 말을 내뱉고 이별을 고했다. 미국에 이민 오면서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어서 끝낸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오래된 연인처럼 시간이 걸리고 마음이 괴로웠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보자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K샘과 알고 지내는 내내 나는 배고픈 아이가 잘 나오지 않는 젖을 찾듯이 배가 고팠다. 누구도 나를 억지로 푸시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다.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었고, 빵부스러기 하나라도 떨어질까 목이 매이게 기다렸다. 가뭄에 콩 나듯이 찾아오는 한 줄기 물줄기처럼 찔끔찔끔 떨어지는 사랑 한 모금에 목을 매었다.


어려서부터 배부르게 먹지 못해 늘 배가 고팠던 굶주림, 맘껏 누려보지 못한 사랑의 목마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일방적인 관계였다는 것을 깨닫고도 한참을 더 망설였다. 그 정도로 한번 맺은 인연을 끝낸다는 건 나에게 커다란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S집사님과 이별을 했다. 그분 또한 참 오래된 질긴 인연이었다. 물론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지루하게 끌어온 관계이긴 하지만 마지막엔 내 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정신적으로 힘드셨던 그분은 어느 날 힘들어서 잠깐 연락을 끊겠다고 하셨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던 터라 뭐가 또 힘드시나 보다, 아님 내가 좀 귀찮게 했나 걱정하며 그러시라고 했다. 언제든 마음이 나아지면 다시 연락 주세요 하고는 연락이 끊어졌다. 솔직히 끝이라고 생각했다. 대쪽 같은 그분 성격에 한 번 아니면 아니겠지 싶어 다시 연락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거의 7-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전화기에 S집사님의 번호가 찍혔다. 어? 웬일이시지 싶어 전화를 했다.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S집사님은 마치 늘 만났던 사람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너무 오랜만이라 멋쩍기도 하셨을 것이다. 거의 15분 이상을 맨발 걷기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썰을 풀어놓으셨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하셔서 맨발 걷기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시는 집사님을 보며 순간 깨달았다.


나는 S집사님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았구나, 오히려 연락을 할까 봐 두려웠구나. 이유는 이렇다. 오랜 만남동안 나는 알았기 때문이다. S집사님의 높은 기대를 채워 드릴 수 없는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깊은 영성을 가지시고,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계신, 온몸으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 애쓰시는 그분을 나는 절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나는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르고 싶지도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냥 땅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하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집사님, 저 식사 중이었어요, 담에 통화해요."


맨발 걷기의 좋은 점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시던 S집사님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전화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도 여러 인연들이 수명을 다하며 나의 삶을 떠나갔다. 그때마다 아팠지만 차츰 통증이 덜해졌다. 그것도 익숙해지나 보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가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서야 나의 인생에 나만의 소용돌이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든 크든, 연못 중앙이든 구석이든 나는 나대로 나의 소용돌이를 만들면 되는 거였는데. 커다란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며 나도 끼워달라고 애원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커다란 소용돌이들은 아름다운 자태만 뽐낼 뿐 내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나만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예쁘게 가꾸면 되는 거였는데.


요즘 나는 나만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했고, 이번 봄에는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뜨개질도 시작해볼까 싶다. 무엇보다도 내 옆에서 나의 삶을 채워 주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들은 늘 거기 있었고 나의 시선을 기다라고 있었는데 커다란 소용돌이만 쳐다보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제 나를 애타게 찾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끌어안는다. 서로에게 흔쾌히 곁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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