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둘째를 기차역에 데려다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는 공부를 하는 틈틈이 일주일에 한두 번 맨해튼에 있는 카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기차역까지의 거리가 상당해서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차로 데려다준다.
둘째 딸은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약속을 했으면 급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에 큰 딸은 좀 다르다. 얼마 전, 큰 딸이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맨해튼에 놀러 가기로 했다.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어서 차가 없는 두 동생을 태워서 가기로 한 것이다. 아침 11시에 오기로 했는데 그 시간이 되어도 도착하지 않으니 둘째가 문자를 한 모양이다. 그제야 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단다. 20분 정도 늦는다고 했는데 도착한 시간은 30분이 지나서였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차에 타라고 하는 언니의 말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렇다고 큰 딸이 모든 약속들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은 아니다. 동생들은 편하니 그냥 캐주얼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문제는 둘째의 마음이다. 약속한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 없이 늦을 때 자신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데 있다.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니, 다음부터는 늦을 것 같으면 미리 문자 좀 해 줘."라고.
둘째는 이미 기분이 상해서 그런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기분이 나쁘면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떠냐 했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언니는 나한테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데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 기분 나빠하나 생각할까 봐 말을 잘 못하겠어."
듣고 보니 우리 가족들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 간에 서로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것들을 안 하다 보니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 친해지지 않는다.
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남편과 나는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렀다. 나의 갱년기와 함께 그동안의 쌓인 불화가 최고조에 달했다.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집안은 소리 없는 긴장감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울면서 남편에게 말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따뜻한 위로 한마디야."라고.
"나는 위로를 해줄 수 없는 사람이니 다른 데서 찾아봐." 매정하게 돌아온 남편의 대답에 마음이 무너졌다.
우리 부부를 돌아봐야 할 순간이 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물론 결혼 생활 동안의 히스토리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경험들이 서로를 냉담하게 만들었고 해 봤자 안될 거라는 체념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 과정 중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남편에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혼 생활 내내 정당한 나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고 또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한국이라는 사회적 특성이 여성들이 자신의 요구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일단 아니었다. 나의 기질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목소리를 밖으로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목소리를 크게 내면 누군가 마구 비난할 것 같아서였다.
'여자가 웬 목소리가 그렇게 커.' 하는 꾸짖음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알고 보니 남편 또한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이고 보니 목소리가 컸을 뿐 정당한 권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남편도 모두 수동 공격을 밥먹듯이 했다. 서로의 바람과는 다른 것들을 한다든지, 느리게 반응해서 답답하게 만든다든지, 꾸역꾸역 고집스럽게 대꾸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결국 둘 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마음만 상하고 싸움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악순환이다.
아주 간단한 요구를 말하지 못해 돌리고 돌려서 표현하다 보니 소통은 안되고 화만 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원하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좀 친절하게 말해 줘."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 줘."
"오늘 몸이 안 좋아, 죽 좀 끓여줘." 등등.
무뚝뚝하고 거친 남편의 말과 행동에 매번 찔리면서도 요구하지 못해서 섭섭하고 화가 났다. 보면 모르나, 알아서 좀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게 날마다의 주제가였다. 한국 사회에서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아내들이, 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요구를 하지 못해 오늘도 이리저리 돌려서 말하느라 힘을 빼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딸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우리 부부의 오랜 습관이 딸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쁜 거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말했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게 너한테 중요하다는 걸 당당하게 인정하고 표현해도 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너에게 중요한 것을 건강하게 요구하면 되는 것 같아. 너한테는 시간을 지켜주는 게 너에 대한 존중이잖아."
둘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가볍게 표현하는 법을 연습해 갈 것이다. 엄마인 내가 조금씩 나아지듯이 딸도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