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백인 여자 환자가 투석실로 들어왔다. 보통 투석을 받는 환자들은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젊은 환자들은 알코올성 간손상으로 신장까지 망가진 경우가 많다. 이름은 캘리,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띄는 환자였다. 투석하는 세 시간 내내 책을 보기도 하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면서 조용하게 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투석을 마치고 transporter를 기다라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른 환자를 돌봐야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마침 charge를 맡은 미쉘이 캘리에게 괜찮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오래 기다린 그 환자가 생각나서 다가갔더니 울고 있었다. 점심도 거르고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하면서. 배가 고프다고 울 것까지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황스러웠다. 얼마 되지 않아 transporter가 도착해서 다행히 환자는 투석실을 떠났다. 퇴원하지 않는 이상 이틀 후에 다시 올 것이다.
같이 일하는 몰리에게 캘리가 배고프다고 하며 울어서 좀 당황했다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전에 몰리가 맡은 적이 있었는데 잠깐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술에 의존해서 살다가 알코올 중독에 이르고 결국 몸을 망가뜨리게 된 것에 대해 후회가 많다고 했다. 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신앙심이 깊은 몰리는 함께 기도해주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작년에 맡았던 젊은 남자 환자가 생각났다. 같은 이유로 간과 신장이 망가져서 투석을 처음 받게 된 환자였다. 상태가 좋지 않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불투명했던 걸로 기억한다. 잘생긴 백인 남자였다. 항상 젊은 여자가 따라오길래 누군가 했더니 피앙세라고 소개해 주었다. 정성스레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면서 곁을 지켜주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투석을 받고 있다가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이 상황까지 온 자신을 탓하는 듯한 눈물처럼 보였다.
오늘 투석을 하러 온 캘리라는 환자는 네 살바기 아들을 키워야 하는데 아파서 제대로 돌봐 줄 수 없는 상황에 있고 전에 그 남자 환자는 사랑하는 피앙세가 있는데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을 것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까지 마음 아파하는 일들이 내게도 있다. 나는 왜 그때 남편과 떨어져 사는 선택을 했을까?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지금도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이 년쯤 떨어져 지낸 후에 다시 같이 살기로 하고 집을 얻었다. 시댁을 방문하지 않은 째로 또 몇 년을 흘려보냈다. 그 일로 인해 남편은 깊이 상처를 받았고 부부 갈등의 숨겨진 이유였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남편과 나는 일 년이 넘는 기간을 부부 상담을 받으며 회복을 위해 힘썼다. 남편이 그때의 힘들었던 자신의 감정을 꺼냈을 때 솔직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깊이 숨겨두고 없는 듯이 살고 싶었는데 들추어내는 것이 내게는 고통이었다. 힘들었지만 용기를 내서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는 그 어두운 터널에서 마침내 남편과 함께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참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위에 얘기했던 환자들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알코올 중독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 보호 장비를 갖추지 않고 나무나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장애를 입거나 생명을 잃는 사람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슴을 만나 중환자실로 들어온 사람들 등등.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다. 자신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지킬 수 없게 된 현실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