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줄일 수 없지만, 흘려보낼 수는 있다

감정도 위장처럼 소화가 필요해요

by 김보민

나는 천성적으로 스트레스에 강한 편이다. MBTI가 ESTP, 그것도 완전 대문자 P. 계획? 그런 거 없고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가 인생 모토였고, 이 덕분에 지금까지의 삶의 굴곡 앞에서도 꽤 유연하게 살아왔다. 낙천적인 성격에, 일 벌이는 건 잘해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ESTP는 우울증 올 확률이 가장 낮은 MBTI라고 하더라. 믿거나 말거나지만.)


하지만! 전공의 시절엔 그 내성도 무너졌다. 잠 못 자고, 못 먹고, 그 와중에 환자의 생사는 매일 내 앞을 스쳐 가고, 살아서 온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을 매일 목격하다 보면 정말...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선명하다. 환자의 심전도가 ‘삐—’ 하고 멈추던 그 순간. 손이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밤. 그땐 솔직히,

“왜 내가 이런 과를 선택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 잘 버티고 전문의만 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야~”


그러나 현실은... 전문의 되고 셋째 생기고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 셋 등하원에 집안일까지. 병원에서 먹고 자고 밤새 당직은 안서도 되지만 그 외에 내 삶이 좋아진 건 크게 모르겠더라. 오히려 병원 개원하느라 크게 대출 받아서 그동안은 없던 빚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고, 병원 운영해야 하고, 직원 관리 해야 하고. 애들이 크면 손이 덜 갈 줄 알았는데 사춘기 되면서 아이셋이 모두 질풍노도를 겪고, 학교에 상담하러 가야 하고, 그 와중에 나 자신도 나이들고 갱년기가 되면서 젊었을 때처럼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크면서 돈도 많이 들어가고...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전 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잠깐만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이게 진정 사람 한 명 몫 맞나요? ㅜㅜ’

낙천적인 내 성격에도 스트레스는 감당 불가의 쓰나미처럼 밀려왔고, 그 스트레스를 먹어서 소화시켜야 하는 건 내 마음과 몸, 특히 위장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스트레스는 줄이는 게 정답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 감정을 뱃속에 쌓아두면 소화불량, 복통, 갑작스러운 폭식, 아이스크림 쿼터 바닥까지 다 먹는 일(실화라서 더 무서움) 이런 현상으로 나오니까.

나는 평소엔 춤추고, 걷고, 노래 부르고 어떻게든 내 감정을 해소하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이러다 내가 병이 나겠다.”

싶어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필요한 약물치료도 받았고, 상담도 받았다. 그게 나를 살렸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정적으로 보거나 숨기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말하고 싶다.

“정신과는 약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려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감정과 스트레스, 비만과 폭식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폭식하는 이유는 배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 마음을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정신과는 내가 약해서 가는 게 아니에요.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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