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고현
#Jam있는중국이야기-943 “진시황의 거울” 중국,중국인
역사란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시황의 무덤은
고대 시간을 통해
오늘의 중국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기원전 200년 당시 문명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궁궐에 명견고현(明鏡高懸) 걸려 있어 몸 안을 볼 수 있었다.
이 거울은 방경이라 하였는데 크기는 세로 5척 9촌이고 가로가 4척이나 되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세로 180cm 가로 120cm 크기이다. 당시 중국인의 키에 비하면 매우 큰 것이었다.
거울에 자신의 몸 전체를 보려면 눈높이가 키 높이라 간주할 때 본인의 키의 절반 정도 크기의 거울이면 되므로 이렇게 큰 거울은 중국인을 위하여 만든 것이라 보기 힘들다.
완취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은 키가 10척이라 했다. 10척이면 3m 30cm으로 거구이다. 사람들은 이것에 자신을 비추는 것을 즐거이 했다고 한다. 이것에 자신을 비추면 몸의 이상한 곳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현대에 MRI, CT,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의 기능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명경의 테두리에는 태양과 달 등 천체가 새겨져 있고 앞 뒷면이 모두 밝게 빛났으며 거울 앞에 서면 사람을 거꾸로 보이게 하였다고 하며 오장육부를 비추었는데 장기의 환부나 그릇된 마음까지도 보였다고 한다.
황제는 거울에 신하들의 속을 비추어 보길 즐겨 했으며 심장이나, 쓸개가 빠르게 움직임이 보이면 체포하여 심문하고 처벌하였다고 한다(서경잡기 권3 발췌). 서경잡기는 왕들의 행적이나 치적들을 기록하여 놓은 기록서이다.
진시황제의 유물 발굴의 용병 갱도에서 출토된 길이 90cm인 청동검 19자루가 마치 방금 제조한 것처럼 발견되었다. 그중 한 자루가 수백 Kg에 달하는 조각 돌상에 눌려있었던 상태였는데 조각 돌상을 치움과 동시 검이 위로 튀어 오르면서 구부러져 있었던 검이 반듯하게 복구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진시황릉의 동검 미스터리 기사에서 발췌된 부분이다.
중국과학자들은 형상기억 합금기술(힘에 의해 변형이 되었을 때 본래의 형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 – 이 기술은 1950년대에 개발되었다)을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특기할 사항은 2000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던 청동검이 부식되거나 녹이 슬지 않고 새것처럼 반짝였다는 것이다. 검사결과 청동검에서 크롬 코팅기술이 적용되었다고 밝혔다. 코팅기술은 기원전 2200년경에는 당연히 없었던 기술이다. 검의 손잡이는 청동이 아닌 목재로 제작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청통검이나 황동검을 사용할때이므로 합금이나 도금기술은 다른 세계의 기술임을 분명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연유로 진시황능의 발굴은 일단 멈추었다고 한다. 진보된 기술의 유물이 행여 손상을 우려하여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다고한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