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승달

첫사랑

by 트래거

시골의 밤은 차다. 차지만 맑다.

그 맛있는 공기를 먹을 때면 배가 부르기보다는 가슴이 부른다.

가슴에 그 공기 들어오면 터져서 죽어도 좋을 만큼 시원하고 맑다.


공기에 취해서 기분 좋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에 가린

반짝이는 별들이 한 움큼씩 자리 잡고 있다.

노랗지도 하얗지도 않은 ,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색깔의 빛을 띠는 것 같은,

그러한 아름다움이 하늘에서 피어난다.


하늘에 심어져 있는 빛나는 꽃들이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을 때

가장 환하게 미소 지어주는 건 낮에도 보였던 초승달,


눈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는 초승달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밝음을 듬뿍 떠서 하늘에 뿌려 놓고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나의 얼굴에도 초승달 두 개가 만들어진다.


중학교 입학식에서 마주친 아이의 눈에서 어제 본 초승달이 보였다.

그 반짝임에 빠져든 난 그렇게 너와 사랑에 빠졌다.


밤하늘의 달을 잡을 수 없듯 너와의 사랑도 결국 잡히지 않았고,

하늘과의 거리만큼 멀어져 갔지만


나의 비밀번호는 여전히

'초승달 15'


20년이 지나도 바꾸지 않는 비밀번호는 첫사랑이었다.

잊혀 가던 비밀번호의 의미가

창문에 비친

달빛에 떠오른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4화사마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