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데

화장실

by 트래거

5년 전 결혼하면서 가장 먼저 설치한 비데

렌탈 서비스를 통해서 3년 사용하다가 청소 서비스, 위생적인 측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데를 꼼꼼히 비교 후 구매하여 직접 설치하였다.

오랜만에 계속 렌탈을 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가져 본 소유욕이었다.

그냥 가지고 싶었다. 화장실에 하얀 비데를.


고등학교 때까지 시골집에서 사는 나는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였다. 집 밖에 있는 그곳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곳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계절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였다.


봄과 가을은 그나마 사용하기 편했다. 여름이 오면 참기 힘든 냄새, 모기로 인해서 항상 달팽이 같은 모기향이 피워져 있었고, 그 향이 냄새를 그나마 잡아주었다. 냄새는 괜찮았다. 더 힘들었던 건 하얀색 똥이 묻은 구더기들이 기어 올라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겁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모기향을 피우는 라이터를 이용해 그것들을 볼일을 볼 동안 죽이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이익' 소리와 함께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집의 형편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하였다. 겨울이 오면 밖으로 나가기 싫어졌지만 어쩌겠는가 살아가기 위해서 추위와 싸우며 볼일을 해결했다. 온몸이 어는 듯한 추위에도 동물의 배변활동은 문제가 없었다. 이런 어린 시절 덕분인지 군대에서 3박 4일 산에서 훈련할 때, 다른 병사들이 화장실 문제로 힘들어해도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이미 적응 만렙이니깐..

더 최악은 그곳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였다. 여름 장마철에 빗물이 들어와 똥물이 넘칠 경우나 겨울이 되어 얼기 시작하면서 점점 높아지는 그것들은 어린 시절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암울 했다. 결국 쌓이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똥차가 올 때까지 이웃집 화장실을 빌린다던지, 소를 키우던 시절에 외양간에서 볼일을 보았다. 그때 소의 동그란 눈이 나를 쳐다보는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해야 하는 걸 빚을 내서라도 했고, 식구들이 굶주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아직도 너네 어렸을 때 먹을 건 잘 먹었지?'라고 지금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래 먹을 건 잘 먹었어. 어린아이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닌 어른들의 먹거리를 너무나 맛있는 게 먹는 척을 했어. 근데 아빠. 아니 아버지. 나에게 필요했던 건 맘 편히 배설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 먹는 게 아니라...

그 시절 담배를 태우던 당신은 화장실의 냄새가 나지 않았겠지.. 당신이 나온 뒤 화장실을 가는 게 좋았어. 덜 냄새가 났으니깐.. 집 안에서 당연하게 피운 역겨웠던 담배 는 화장실에서 방향제 역할을 했으니깐.'


지금 나는 화장실을 일주일에 한 번 꼭 대청소를 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보이거나 곰팡이가 보이면 바로바로 제거해서 오래 있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다. 비데를 대학교 교수 화장실에서 처음 사용 했을 때의 충격과 쾌감, 그리고 동경은 현재 우리 집에 대여가 아닌 하얀색 비데가 자리 잡고 있게 해 주었다.


이건 그냥 나의 비데이야기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5화초승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