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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Sep 25. 2021

아니 무슨 개 병원비가 이렇게 비싸?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24

여러분은 동물 병원에서 청구된 비용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으세요?


작년에 진행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동물 병원에 관련된 불만족의 원인 TOP 3는 전부 진료비와 관련된 것들이었어요. 필요 없는 검사를 무리하게 요구하거나 보호자 동의 없이 비싼 검사를 진행하고, 같은 치료인데 병원마다 비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죠. 


동물 병원에서의 진료는 보통 다음과 같이 진행돼요.

증상을 듣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해요. 그 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 질병을 예상할 수 있어요. 예상되는 질병을 확인하기 위해 어떤 검사를 진행할지 결정하고 검사 결과를 통해 진단을 내리죠. 진단이 나오면 치료 방법을 결정하여 그에 대한 반응을 보게 돼요.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각 단계마다 보호자분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예상 비용도 고지하여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위에서 언급된 '불만족' 사항들이 최소화될 것이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과연 이런 절차를 거치고 나면 동물 병원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을까요? 실제 위의 방식대로 진행을 해도 검사나 치료 비용을 듣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아요. 호자분께서 예상했던 금액과 차이가 난다고 하세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값어치를 평가할 때 기존의 경험적 지식을 사용하게 돼요. 만약 지구 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런 물체를 보여주고 이건 얼마일 거 같냐고 묻는다면? 쉽게 가격을 예상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처음 보는 과자 한 봉지를 놓고 얼마일 거 같냐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존에 구매했던 과자 한 봉지의 값과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할 거예요. 천 원에서 이천 원 사이 혹은 비싸 봤자 삼사천 원? 


그렇다면 동물 병원 진료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분들은 과연 무엇과 비교해서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걸까요? 바로 우리나라 사람 병원에서의 진료비를 기준으로 판단 내리게 돼요.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유사해 보이거든요.

우선은 같은 의료 서비스 업종에 속해요. 게다가 대부분 병원이나 약국에서 본인 혹은 가족의 진료 비용을 지불해 본 경험이 있어요. 그럴 때 얼마의 비용을 지불했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예상 가격대를 설정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의료와 동물 의료 간엔 많은 차이가 있거든요.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국민 건강 보험의 유무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이 병원과 약국에서 내는 비용은 실제 발생한 비용 대비 적게는 5%, 많게는 60%에 되지 않아요. (본인 부담 비용의 차이가 큰 이유는 '누가' '어디서' '어떤' 진료를 받냐에 따라 본인부담률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나머지 비용은 전 국민이 매달 내는 건강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 보험 공단에서 부담하죠. 그러다 보니 발생된 비용 100%를 다 내야 하는 동물 병원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사람 진료엔 부가세가 붙지 않아요. 하지만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제외한 동물 병원에서 행해지는 모든 진료엔 부가세 10%가 붙어요. 즉 동물 병원에서 발생한 비용의 100%를 내는 게 아닌 110%를 내야 돼요. 국민 건강 보험 덕에 20%만 낼 경우 같은 청구 비용이 나와도 결제하는 비용은 무려 5.5배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죠.


이 외에도 이 통하지 않는 털북숭이 이기에 생기는 차이들 있어요.

우선 사람 대비 상담 시간이 훨씬 길어요. 말 못 하는 털북숭이가 어디가 아픈 지 정확히 모르니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야 하기에 상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사람 병원에선 의사 선생님과 얘기하는 시간이 3분도 채 안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동물 병원에선 훨씬 오랜 시간을 상담하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에 알맞은 검사와 진단, 치료를 하기 위해서예요.

게다가 무슨 검사를 하든 털북숭이들은 비협조적이에요. 피를 뽑을 때도 초음파를 볼 때도, 방사선을 찍을 때도 항상 털북숭이를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 줄 추가 인력세명 정도 필요해요. 

거기다 같은 약을 쓰더라도 동물 병원에 공급되는 비용과 약국이 공급받는 비용이 차이가 나요. 법의 구조적인 문제로 중간 단계가 늘어나고 대량 구매를 할 수 없어요. 거기다 동물 전용 약들은 대개 훨씬 비싼 가격에 공급돼요. 그러다 보니 원재료비 자체가 차이나요.


이런 여러 요소들이 사람과 동물 간의 진료비를 차이 나게 해요. 회 제도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를 이해하는 동물; 사람'과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 털북숭이'간의 특성에서 오는 차이도 있죠. 래서 똑같은 진료를 보더라도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간혹 이러한 차이에 대한 고려 없이 사람 병원과의 단순 비교를 통한 비난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허위 진료나 과잉 진료와 같은 극히 일부인 수의사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현실적인 이유로 발생되는 차이를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에요. 빨간색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부디 오늘 이 글을 통해 동물 병원과 수의사에 대한 색안경을 조금은 내려놓으셨길 바라요.



p.s.


사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가장 큰 차이가 있어요. 그건 바로 사람이냐 아니냐는 거예요. 고양이기 때문에, 강아지이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혹은 몇 개월의 연명 치료를 위해 큰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본문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해요. 저는 '짐승 한 마리' 키우는 분께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분들께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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