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Oct 21. 2021

털북숭이가 뒷다리를 절어요! 슬개골 탈구 수술해야 되나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30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집 털북숭이가 갑자기 얌전해졌어요. '왜 이렇게 얌전하지? 얘가 좀 피곤한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 털북숭이가 일어나서 화장실로 걸어가요. 그런데 뒷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가요!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슬개골 탈구인가? 빨리 동물 병원을 가야겠다 싶어 나갈 준비 하며 '강아지가 다리를 절어요', '슬개골 탈구' 이런 키워드들을 검색하죠.


고양이 집사님들은 슬개골 탈구를 별로 걱정 안 하세요. 실제로 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증상과 상관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보다는 만성 관절염이나 골절, 근육이나 인대의 염좌로 인해 주로 다리를 절어요.(염좌 : 근육이나 인대가 늘어나거나 일부 찢어지는 것) 드물게 발톱 관리가 안 돼서 발톱이 길어져 발바닥 패드를 찔러서 다리를 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발톱을 잘라주거나 스크래쳐로 발톱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줘야 하죠.


하지만 강아지는 고양이에 비해 슬개골 탈구와 그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고양이에 비해 많다는 거지 강아지 뒷다리 파행의 원인으로 슬개골 탈구가 압도적인 건 아니에요.(파행 : 다리를 절룩이며 걷는 것) 하지만 보호자분들은 강아지가 뒷다리를 절면 대개 슬개골 탈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지계에서 가장 유명한 질환 중에 하나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죠. 하지만 오해예요.




다리를 절룩인다고 다들 슬개골 탈구가 온 건 아니에요. 골반에서 허벅지, 정강이, 발목을 지나 발가락까지 이어지는 구조의 뼈나 관절, 근육과 인대 등 어디에도 이상이 있으면 다리를 절룩거리기 때문이죠. 슬개골 탈구 질환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대부분 슬개골 탈구를 의심하고 관련된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 오세요. 하지만 막상 진료를 보면 슬개골 탈구가 아닌 다른 이유로 다리를 저는 아이들이 훨씬 많아요. 질병에 따라 나누어서 설명드릴게요.


우선 골절.

골반뼈, 허벅지뼈, 정강이뼈, 발목뼈와 발가락뼈 어디든지 골절이 생길 수 있어요. 대개 골절이 있는 경우엔 외상이라는 명확한 이벤트가 있어요. 차에 치이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경우죠. 아, 산책 중에 발이 어딘가에 끼어서 부러진 아이도 있었어요. 이렇게 골절이 발생되면 해당 부위를 만지는 걸 매우 아파해요. 보통 아이들이 다리를 절면 보호자분들은 어디가 아픈 건지 확인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여기저기 만지다 물려서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뒷다리의 어느 부위가 아픈 건지 굳이 확인하려고 하지 마세요. 괜히 통증만 심하게 만드니까요.

아이들이 보이는 증상은 골절 부위에 따라 달라요. 골반이나 발가락 뼈가 일부 부러지는 경우엔 절룩거리며 딛기는 해요. 하지만 허벅지나 정강이뼈가 부러지거나 골반과 발가락이 심하게 부러진 경우엔 아예 리를 접어서 들고 다녀요. 이럴 때는 정말 주변으로 손을 뻗기만 해도 아파해요.


다음은 인대 단열.

강아지에서 인대가 단열될 만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어요. 바로 십자인대죠. 허벅지 뼈와 정강이 뼈가 서로 엇갈리지 않고 잘 맞닿아있게 해주는 게 바로 십자인대예요.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인대가 끊어진 것만으로도 통증을 유발하지만 더 큰 통증은 다리를 디딜 때 나타나요. 다리를 딛는 순간 허벅지 뼈와 정강이 뼈가 서로 엇갈리게 되고 이로 인해 무릎에 큰 통증을 유발하죠. 그래서 다리를 딛자마자 들고, 다시 딛자마자 드는 패턴을 보여요.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무릎이 부어오르고 허벅지뼈와 정강이뼈의 결합이 불안정해져요. 이 특성을 이용하여 동물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해요. 그런데 이를 집에서 체크하기엔 테크닉을 요하죠. 그리고 골절과 마찬가지로 검사할 때 아이들이 엄청 아파해요. 러니 이 역시 집에서 무리하게 확인해 보려고 하시지 마세요.


그리고 탈구.

탈구라는 것은 뼈가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해요. 강아지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 슬개골 탈구와 고관절 탈구가 있어요. 슬개골 탈구는 1~4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심한 4단계가 되어도 전혀 증상이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특히나 천천히 진행되는 아이들은 탈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지만 공놀이 하다 혹은 점프하다 급성으로 빠질 경우엔 명확한 증상을 보여요. 계속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니죠.

이러한 급성 탈구를 제외하고 만성 슬개골 탈구에서 가장 흔한 증상은 바로 '간헐적'인 파행이에요. 슬개골이 빠져있을 땐 다리를 불편해해요. 하지만 다리를 쭉 펴면 원위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다시 정상적인 보행 모습을 보이죠. 그래서 깨금발을 딛다가도 금세 다시 잘 걷는 모습을 반복한다면 슬개골 탈구일 가능성이 높아요. 런 독특한 증상 말고도 집에서 뒷다리 발바닥을 씻기다 무언가 툭 툭 거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이 역시 슬개골 탈구의 전형적인 증상이에요.

그다음으로 흔한 것은 고관절의 탈구예요. 골반 뼈에서 허벅지 뼈가 빠지는 것을 의미해요. 앞으로 빠지냐 뒤로 빠지냐에 따라 아이들이 취하는 자세와 교정 방법이 다른데, 거의 대부분 앞으로 빠져요.(고관절 탈구를 수술 없이 환납하기 위해서 저희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꽤 많으신데, 뒤로 빠진 아이는 저도 한 번 밖에 못 봤어요. 그만큼 드물어요.) 허벅지 뼈가 앞으로 빠지면 다리를 곧게 편 상태에서 발 끝을 앞쪽으로 뻗고 있어요. 마치 발레의 '바뜨망 땅뒤 드' 같은?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세요. 아하! 이 자세! 하고 바로 느낌이 올 거예요.)

고관절 탈구는 슬개골 탈구와 같이 보행에 따라 자연스레 제 위치로 돌아가 않아요. 그래서 계속 발레 동작을 하고 돌아다니죠. 


만성 관절염.

관절염은 주로 노령인 아이들에게서 많이 관찰돼요. 고관절(골반-허벅지), 무릎관절(허벅지-정강이), 발목관절 3 군데 중에 주로 고관절에 염증이 많이 생겨요. 그런데 웬만큼 심해지지 않는 이상 증상이 보이지는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건강 검진을 하다 혹은 다른 이유로 방사선을 찍다 우연히 관찰되는 경우가 많죠.

대개 양쪽에 동시에 발생되기 때문에 티가 잘 안 나지만 간혹 한쪽에만 오는 경우엔 다리 근육의 두께가 달라져요. 아무래도 미약한 통증이 지속되어 본능적으로 그 다리를 잘 안 쓰게 되어 근육이 얇아지는 거죠. 하지만 털북숭이들은 사람과 달리 네 발로 다니기에 한 발에 무게를 덜 지탱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아요. 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면 한쪽에 무게를 덜 지탱하면 발 티가 날 텐데 말이에요...

무리해서 뛰거나 오래 걸은 뒤, 혹은 오래 앉아있다 일어나서 다리를 일시적으로 불편해한다면 만성 관절염을 의심해 보는 게 좋아요. 람 만성 관절염과 증상이 매우 유사하죠?


마지막은 염좌.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인대도 멀쩡하고 탈구도 없는데 다리를 절룩인다면? 대개 단순한 염좌로 판단해요. 정확히 어디가 아픈 지 알려주질 않으니 알기 어렵지만 진통 소염제를 먹으며 시간이 지나면 대개 자연스레 돌아오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경험담인데요, 집에서 열심히 다리를 절다가 병원에만 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런 아이들은 대개 염좌일 것으로 추정돼요. 골절이나 탈구, 인대 단열은 병원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을 수가 없어요. 너무 아프거든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근데 염좌는  악 물고 참으면 숨길 수 있나 봐요.

집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비명 소리에 한 번 놀라고, 절뚝거리는 행동에 두 번 놀라서 병원에 뛰어왔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털북숭이를 보면, 허탈함에 배신감마저 들어요. 산책 나가자고 연기한 게 아닐 거예요. 지옥에서 온 하얀 옷의 악마가 자기를 엄마 아빠 없는 이상한 곳으로 끌고 들어갈까 봐, 아파도 꾹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거죠.(네, 맞아요, 하얀 옷 입은 악마는 저예요. 수의사죠.) 그러다가도 다시 집에 돌아가면 또 보란 듯이 다리를 절룩거려요. 어이구.

그러니 너 왜 아픈척했어! 라며 화내지 마시고 괜찮으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세요. 아픈 곳을 숨겨야 하는 동물적 본능에, 악마의 손에 끌려가기 싫은 연약한 마음으로 하는 행동이니까요.



이렇게 다리를 저는 것만으로도 생각해봐야 할 질병과 부위가 많아요. 물론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징적인 증상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마저도 100% 확실한 것은 아니기에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려야 하죠. 특히나 고관절에 만성 관절염이 있고 슬개골 탈구도 있는데 염좌가 생긴 경우, 어디 때문에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확신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그래서 소 걸음걸이와 병력, 근육의 두께와 증상이 나타난 시기, 증상 발현 전 있었던 사건 등 여러 가지 정황을 함께 파악해서 결론 지어요.


그러니 다리를 전다고 해서 무조건 슬개골 탈구부터 의심하지 마세요. 잘 걷다 깨금발, 다시 또 잘 걷다 깨금발. 이런 게 반복된다면 슬개골 탈구 의심 인정! 하지만 절룩 거린다면 다른 질환을 먼저 의심해야 돼요. 


아! 그리고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평소에 아이의 슬개골 상태가 어떤 지, 나이가 들었다면 고관절의 모양이 변형되지는 않았는지 주치의 선생님께 미리 체크해 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아플 때 검사한 자료가 안 아플 때 검사한 자료와 비교가 가능하다면, 진단의 정확도가 훨씬 높아지거든요! 좀 더 나아가서 건강할 때 진행한 건강 검진이 털북숭이가 많이 아플 때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언제부터 나빠졌는지 알면 병의 진행 속도와 예후를 예측하기 쉽기 때문이죠.

작가의 이전글 귀에 물 들어가면 안 돼요. 귓병 생긴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