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해마다 지지만, 마음은 해마다 피어난다

워커힐의 벚꽃

by 우주아빠


워커힐의 벚꽃은 봄이 왔다는 알림장이었습니다.

마치 작년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듯, 올해도 우주와 손을 맞잡고 그 길을 걸었습니다. 같은 길,

같은 나무, 같은 꽃인데도,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는 게 신기합니다. 아마 아이가 해마다

다르게 웃기 때문이겠지요. 아이는 자라고, 우리는 아이 안에서 자랍니다.


작년처럼 복이와 딸 타미도 함께였고, 봄은 그렇게 우리 곁에 네 사람의 그림자로 내려앉았습니다.

서로를 찍어주고, 웃고, 숨은 꽃잎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사진 속에 담긴 건 꽃보다 사람의

표정이었고, 그 웃음은 꽃보다 더 피어났습니다.


허 감독님이 합류하고 우리 자리는 유난히 햇살이 깊었습니다. 피자 상자 위로 쏟아지던 오후의 빛,

한 조각의 피자처럼 조각조각 나눠 먹던 이야기들. 시나리오 얘기를 꺼내는 순간, 바람이 살짝

흔들리고 나무가 조심스레 귀 기울이는 듯했지요. 창작이라는 건 늘 그렇듯, 마음속 봄을 꺼내어 다른 이의 계절에 놓는 일이니까요.


우주는 인무 삼촌을 참 좋아합니다. “저거 삼촌 집 가는 버스야!” 3000번 버스를 볼 때마다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아직도 마음 한가운데에서

반짝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아이의

세계를 넓히고 깊게 만든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배웁니다.


워커힐 호텔은 이제 우리 가족의 기억 속 작은 풍경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아내 덕분입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부모님께 좋은 식당의 맛을

알려드릴 일도, 호텔 창 너머 봄을 선물할 기회도

없었을 거예요. 저는 가끔 이 모든 인연의 끈을

아내가 조용히 꿰어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저는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누군가의 계절을 가꿔갈 수 있었습니다.


내년 봄도 꼭, 오늘의 이 벚꽃처럼 따뜻하길

바랍니다. 복이와 타미와 우주가 다시 꽃길을

뛰놀고, 그 옆에서 우리가 조용히 웃고 있기를.

시간이 지나도 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꽃잎은 해마다 흩날리며 알려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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