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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悲哀)라는 이름으로 비탄(悲嘆)을 말하다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 - 외할머니를 애도하며

by 나원

외할머니는 곱디고운 외모에 흥이 많은 분이었다. 그리고 특유의 살가운 성격으로 손주들을 향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시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상당히 많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동짓날 팥죽 새알을 빚기도 했고, 김장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으며 옥상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동지팥죽의 의미, 김장을 하는 이유 그리고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나날이 커 갔지만 외할머니는 늙어가고 있었다. 나는 성장 과정에 따라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바빠서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외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보내며 집 근처 대학 캠퍼스에서 저녁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혼자 카페를 갈지 고민하던 무렵, 갑작스레 어머니에게서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전해져 왔다.



외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표를 예약했으나 입관식이 지나고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외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놓쳐 버렸다.




30대 초반인 나는 생애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누군가의 상을 처음 치러보는 것이었다. 때문에 장례 문화가 낯설었고, 실제로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장례식장은 슬픔에 가득 젖지만은 않았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이때밖에 없는 것 같은데 막상 실제로는 조문객이 드나드는 것과 상을 치르며 지켜야 할 예절, 형식에 더 신경이 쓰이곤 했다. 때가 되면 울다가 눈치껏 분위기를 봐 가며 울음을 그쳐야 하는 게, 마치 꼭 알람을 맞추고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울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된 것만 같았다.



물론 외할머니도 우리가 당신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에 하염없이 빠져 있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밝고 정겨운 외할머니는 분명 하늘에서도 우리가 단합이 잘 되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을 거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이러한 장례 문화는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처럼 고인의 마음 또한 사려 깊게 헤아린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외할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 곁에는 부모님이 평생을 나와 함께할 것만 같다. 먼 훗날 부모님이 나를 떠나면, 외할머니를 자주 뵈러 가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던 것처럼 후회를 반복할 것을 알면서도…



장례식장에서도 그리고 매일 밤 외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드리면서도 눈물을 많이 쏟았다. 이 눈물은 내가 외할머니를 그만큼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일상을 핑계로 자주 얼굴 비추러 가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함인가.




기도를 끝마치고 들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비는 그날 밤 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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